"빙수기 얼음넣고 밑에는 예쁜 그릇 얼음이 갈린다 갈린다 얼음에 팥얹히고 프루츠 칵테일에 체리로 장식해 장식해" 노래 '팥빙수'에서 팥빙수를 맛있게 먹는 법을 친절히 설명한 가수 윤종신은 마지막에 "팥빙수 팥빙수 여름엔 이게 왔다야"라고 외친다.
이 노래처럼 찜통같은 무더위엔 팥빙수가 제격이다. 곱게 갈린 얼음 위에 소복히 얹은 팥. 그리고 떡, 과일, 미숫가루, 연유 등 갖가지 고명까지. 더운 여름 날 그걸 한데 뒤섞은 후 먹은 한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만 여름에는 차가운 것을 더 찾게 마련이다. 봄까지만 해도 따뜻한 커피와 차를 찾던 사람들도 여름에는 주문 메뉴 앞에 주저없이 '아이스(ice)'를 붙인다. 아이스크림을 찾는 사람들로 편의점의 아이스크림 냉장고 유리문은 쉴새없이 열리고 닫힌다.
얼마 전 찾은 모 백화점 식당가의 한 카페. 평일 점심시간이 이미 지난 시각이었지만 식당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른 가게는 한산했지만 유독 팥빙수를 파는 이 가게는 사람들이 대기표를 들고 줄을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팥빙수로 연매출 40억원을 올린다는 이 가게의 팥빙수는 화려한 요즘 팥빙수에 비해 꽤 단촐했지만 그 맛은 일품이었다. 우유맛이 풍부하게 감도는 눈꽃같은 얼음과 그 위에 올려진 적당히 달달한 팥 그리고 딱 두 개 뿐이어서 너무나 아쉬운 떡. 세 가지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면서 입안에서 녹아내렸고 더위는 순식간에 잊혀졌다.
올해 여름은 예년에 비해 덜 덥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빙(氷) 사랑'은 여전히 뜨겁다. 인류의 얼음에 대한 애정은 그 역사가 매우 길다. 가장 오랜 기록은 고대 중국인들이 3천년 전부터 눈과 얼음에 과일즙을 섞어 먹었다는 것이다. 고대 황제들도 아이스크림 발전에 한몫했는데 알렉산더 대왕은 눈과 얼음을 동굴에 보관해 음료수 등을 함께 두어 차갑게 먹었다고 하며 로마의 네로 황제는 알프스 산에서 가져 온 만년설에 포도주에 섞은 과일을 얼려 먹었다고 전해진다. 얼음은 아무래도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얼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원전 150년 로마시대에는 얼음과 눈에 질산칼륨 및 소금을 섞으면 온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냉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중국에 다녀온 마르코 폴로는 물과 우유를 얼려 먹는 법을 유럽에 전파했고 이탈리아의 부호 메디치가의 까뜨린느는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결혼할 때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 요리사를 데리고 와 프랑스에 아이스크림을 전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본거지로 삼았는데 이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때 이들의 본거지였던 프로코프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는 1670년 시실리 사람인 콜테리가 연 곳으로 휘핑크림을 얼려 팔았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아이스크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후 아이스크림은 영국을 거쳐 미국에 전해지면서 산업화되게 된다. 1851년 미국 볼티모어의 우유 상인이었던 야콥 후셀은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대량생산해 '아이스크림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같은 인류의 끊임없는 아이스크림 사랑에 힘입어 아이스크림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물에 설탕이나 사카린만을 섞은 아이스케키(얼음과자)에서부터 시작해 딸기, 바닐라, 초콜릿 세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이후 더 다양한 맛들이 첨가된 빙과류들이 쏟아져 나왔다. 콘에 즉석에서 기계로 수북히 올려주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이름처럼 입에서 부드럽게 녹았다. 그리고 31가지 맛을 내세운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생일파티 때 단순한 케이크가 아닌 속에 아이스크림이 잔뜩 든 케이크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요즘에는 웰빙 바람을 타고 홈메이드, 저지방을 앞세운 이탈리아 정통 아이스크림 젤라또가 유행이다. 또한 여러 토핑재료를 차가운 돌판 위에서 고루 섞어 주는 아이스크림도 인기몰이 중이다.
팥빙수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을 계속하고 있다. 온몸을 파랗게 물들인 녹차 빙수가 인기를 끌었고 각종 과일을 얹은 과일빙수에, 세숫대야빙수처럼 양으로 승부하는 팥빙수, 아예 그릇부터 얼음으로 만들어 내놓는 팥빙수까지 종류도 다양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제는 10만원을 호가하는 '황제 팥빙수'까지 나왔다. 한 호텔에서 선보인 이 팥빙수는 자작나무 수액인 이로수를 얼린 얼음을 갈아서 깔고 황금가루, 캐비어, 마, 인삼정과, 애플망고, 복분자 등 최고급 재료들을 곁들였다.
8월 들어 장마가 주춤하면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달콤하면서도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팥빙수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송화정 기자 yeekin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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