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전패 이후 침묵을 지켜왔던 이명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에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조찬을 겸한 정례회동을 갖고 재보선 참패에서 드러난 민심이반에 대한 수습책, 당 쇄신안 및 정국 주요 현안 등을 폭넓게 논의했다.
이날 회동은 여러 면에서 정치권의 관심을 모았다. 재보선 참패 이후 한나라당 안팎에서 불거지고 있는 당정청 전면쇄신과 일부 인사들에 대한 2선 후퇴 요구 등에 대한 당청 수뇌부의 화답이 주어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장고 끝에 꺼내든 카드는 박희태 대표를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의 쇄신과 친박 진영까지 포용하는 화합이었다.
이른바 쇄신과 화합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작금의 혼란상을 극복하고 재보선 이후 정국에 대비하겠다는 것.
무기력한 여권 분위기와 친이, 친박으로 분열된 '한지붕 두가족' 형태의 계파구조를 극복하지 않고는 10월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 전망까지 불투명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이번 선거는 여당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재보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쇄신과 단합 두 가지를 당 대표 중심으로 잘 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당 안팎에서 재보선 참패에 따른 정국 수습방안을 놓고 백가쟁명식의 논의가 불거지는 것에 대해 대통령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보선 참패에서 드러난 민심이반을 수습하기 위해 강도 높은 쇄신책이 필요하지만 박희태 대표 체제는 유지해야 한다는 구상을 밝힌 것.
이는 만일 박 대표가 선거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경우 조기 전당대회 개최가 불가피한 만큼 이에 따른 '친이 vs 친박'의 갈등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것.
아울러 지도부 교체는 경제위기 극복과 6월 임시국회에서의 쟁점법안 처리에 대한 동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또한 이날 회동에서 "여야 합의로 경제법안이 통과됐고 추경도 통과됐다. 앞으로는 서민들 일자리 만들기에 이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박 대표에 힘을 실어준 대목은 이같은 구상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박 대표 중심의 당 쇄신과 함께 이 대통령이 강조한 대목은 역시 당 화합이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7년 대선후보 당내 경선을 전후로 이른바 친이, 친박이라는 계파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면서 이후 당 운영에서 크고작은 홍역을 치렀다.
지난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양측은 적지 않는 내전을 치렀고 총선 이후에도 친박복당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를 포함한 4.29 재보선 결과는 양측의 갈등 해소 없이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도 어렵다는 전망이 불거져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여권 전반의 국정운영의 주도권 장악과 향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계파 갈등 해소와 화합이 급선무라는 것.
이 대통령은 아울러 "당의 단합을 위해선 계파를 뛰어넘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박 대표의 건의에 "여당은 원래 계파색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며 "이제 우리 당에서도 (친이.친박) 계파 소리가 안 나올 때 안됐느냐. 나도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 안팎에서 공감대가 일고 있는 친박 중진 김무성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설에 대해 공감을 밝힌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친박 원내대표론이 표면화될 수 있을 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적지 않은 장애물이 있지만 성사될 경우에는 친이, 친박 진영의 본격 화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다만 당의 개혁소장파 그룹 등에서 인적쇄신과 당정청 전면개편을 강력 요구하는 데다가 친박 원내대표설에 대한 친박 진영의 의구심이 여전한 것은 이 대통령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김성곤 기자 skz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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