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영화진흥위원회[사진=아시아경제DB]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적 정책 변경으로 영화산업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 체계가 9개월째 붕괴 상태에 놓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영화계와 시민사회는 피해자 회복이라는 국가의 공적 책무가 비용 절감을 앞세운 '시장 논리'에 잠식되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여성영화인모임과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섯 단체는 다음 달 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의 '시장화' 중단과 공공성 회복을 촉구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영진위가 피해자 지원사업 방식을 기존의 민관 협력 거버넌스에서 조달청 경쟁 입찰로 전환하면서 불거졌다. 영진위는 지난 수년간 전문성을 쌓아온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대신, 최저가를 기반으로 한 영리 노무법인에 사업을 위탁했다. 단체들은 "피해자 지원의 핵심인 신뢰와 전문성을 배제하고 단순 용역으로 취급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지원 시스템이 마비되는 참사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진위의 지원이 중단된 지난 9개월간, 행정 공백의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과 민간단체에 전가됐다. 다수 피해자는 영리 법인이 아닌, 든든을 찾기도 했다. 이에 비영리단체인 여성영화인모임이 자체적으로 법률 및 의료 지원을 떠안으며 국가가 방기한 책무를 대신하고 있다.
영화계는 이날 회견에서 피해자 보호가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주무 부처의 무책임한 행정을 강도 높게 비판할 방침이다. 핵심 요구안으로는 ▲지원 사업의 시장화 즉각 중단 ▲공공성·비영리성 원칙 확립 ▲국회 권고에 따른 간담회 수용 등을 제시하기로 했다.
현장 발언대에는 각계 전문가들이 오른다.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 이사장과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이 지원 체계 붕괴의 실태를 고발하고,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과 전다운 변호사가 '시장화 정책'의 위험성을 실무·법리적 차원에서 진단한다. 참여 단체들은 피해자 보호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공동 업무 협약을 체결해 연대 의지를 공식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