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0만원, 중국은 3000원'…'골든타임' 놓친 K로봇 부품[로봇 부품전쟁]①

정밀도는 일본, 가격은 중국
사이에 낀 국산 로봇 부품
수요, 공급 있지만 시장 작아
"규모의 경제…시장 커질 것"

편집자주인공지능(AI)이 현실 세계로 확장되며 제조 현장의 중심이 사람에서 로봇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 제조업 중심 구조에 머물러 온 한국은 자동화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할 로봇 부품 공급망이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못했다. 정밀도는 일본에, 가격은 중국에 밀린 구조 속에서 '제조 강국'의 위상도 시험대에 올랐다. 아시아경제는 피지컬 AI 시대를 맞아 국내 로봇 부품 산업의 현주소를 짚고 생존 해법을 모색한다.

<i>"핵심 구동 부품 하나가 한국산이 10만원 정도면, 중국산은 3000원 정도 한다."</i>

산업용·휴머노이드 로봇에 필요한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A 부품업체는 "가격면에서 납품 요건을 맞췄을 때 중국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미 산업용 로봇을 사용하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핵심 구동 부품에서 중국산, 일본산을 찾은 지 오래다. 더 싸고, 성능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배채윤 LS일렉트릭 선행기술연구단장은 "제조 현장에 사용되는 로봇은 일본산이 많다"며 "우리 회사는 아직 중국산을 쓰고 있진 않지만, 중국 제품이 워낙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라 중국산 로봇을 들여오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제조업 강국, 왜 변화에 뒤처졌나

한국 제조업은 유압·공압 기반의 중공업 설비에서 서보모터와 산업용 제어기 중심의 자동화 라인을 거치며 전통적인 제조 라인 설계와 고정밀 장비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통해 축적된 공정 설계 역량과 설비 신뢰성은 글로벌 생산 현장에서 강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력은 완성형 설비와 라인 구축에 집중된 구조에서 형성된 것으로, 로봇의 핵심 성능을 좌우하는 구동·제어 부품 단위의 기술 축적과는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 설비를 통합·운영하는 역량은 고도화됐지만 액추에이터·감속기·센서 등 로봇 부품을 독자적으로 고도화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생태계는 취약한 상태다.

문제는 제조 자동화의 기준이 이미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피지컬 AI 시대의 제조 현장에서는 생산 라인의 안정성보다 로봇의 학습 속도와 동작 정밀도, 부품 단위의 유연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 변화는 이미 현장에 반영돼 AI와 자동화 확산으로 과거 수십 명이 필요했던 공정이 소수 인력으로 운영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산업용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제조 환경에서는 부품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지만, 국내 로봇 산업은 여전히 장비·라인 중심 구조에 머물러 로봇 부품 공급망에서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

급상승하는 로봇 산업…생태계는 부재

지난달 발표한 산업통상부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2024 로봇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로봇산업 매출액은 6조1695억원으로 전년(5조9805억원) 대비 3.2%가량 증가했다. 로봇부품과 소프트웨어 분야 매출도 1조98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9% 늘었다. 스마트 공정 전환과 로봇 산업 성장이 가속되는 것에 따른 현상이다.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 속도와 달리 변화의 원천이 되는 로봇 제조업과 부품 산업에서는 성장이 더디다. 같은 조사에서 국내 로봇산업의 사업체 구조를 따져봤을 때 중소기업이 대부분이었으며 전체 로봇 사업 중 연 매출 10억원 미만의 사업체가 65.1%로 절반을 넘었다. 상당수의 로봇 기업이 로봇 산업에서 수익이 잘 나지 않아 적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미래 가치를 바라보며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제조 업체와 부품 업체 모두 영세하다 보니 핵심 부품의 경우 중국, 일본 등 외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과의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산업통상부에 요구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제조업용 로봇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구동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80.3%에 달했다. 특히 이 중 98%가량이 일본산 부품이었다. 특히 정밀 감속기 시장에서는 일본산 하모닉 감속기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센서부품은 51.5%가량이 외산 부품을 사용했으며 외산 중 중국산 부품의 비중이 2021년 23%에서 2023년 49%가량으로 증가했다.

수요·공급 미스매치, 왜 계속될까

로봇 제조업체들은 국산 부품을 쓸 수 없는 이유로 부품 공급망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로봇 제품을 만들려면 일단 연구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국내엔 로봇 산업 자체가 태동기인 탓에 '소품종 소량 생산' 발주를 맡을 부품 업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연구용과 산업용 로봇을 개발하는 국내 B로봇 제조업체는 자사 로봇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다 직접 만든다며 "로봇을 만들고 싶어도 국내엔 부품을 살 수 있는 업체가 없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로봇 부품업체들은 오히려 생산 수요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부품을 생산하고 싶어도 확실한 수요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부품의 품질로는 일본산, 가격으로는 중국산이 우위를 점하고 있어 한국산 부품이 우위를 갖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국내 감속기 제조업체 에스비비테크 관계자도 "정밀도를 많이 요구하는 설비에는 여전히 일본 부품이 많이 쓰이고 그 외에는 중국 제품들이 저가 형태로 치고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 부품업체 관계자는 "품질과 단가 하락을 위해서 원천 기술의 내재화가 필수적인데, 현재는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현재의 상황을 '규모의 경제'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김진오 한국로봇산업협회장은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되면 실력 있는 기업들이 다 뛰어들 텐데 아직은 시장이 크지 못한 상황"이라며 "시장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로봇 산업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공급망도 빠른 시일 내에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회장은 "국내 다수의 자동차 부품 회사들도 로봇 부품 쪽으로 뛰어들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이제는 다들 '안 할 수 없다'고 인식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산업부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