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디지털 주권과 통상 마찰…한미 디지털 입법 갈등의 해법

최근 한국의 디지털 입법을 둘러싸고 한미 양국 간의 긴장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2026년을 향해 우리 정부와 국회가 논의·추진 중인 이른바 '플랫폼 경쟁촉진법(가칭)'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두고, 미국 정부와 의회, 산업계는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 측은 해당 입법이 자국 빅테크 (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디지털 분야의 비관세 장벽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내국민 대우 원칙과의 정합성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문제 삼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시장 지배적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해 자사 우대 등 특정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경쟁촉진법 구상과 허위·조작 정보 유통에 대한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 논의다. 이러한 규제가 구글·애플·메타 등 미국 기업에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지우는 반면,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와 같은 중국계 플랫폼은 집행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인식이 누적되면, 디지털 규제가 통상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마찰을 완화하며 디지털 경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특정 기업을 미리 '게이트키퍼'로 지정하는 사전 규제 방식에 대한 유연한 재검토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MA)을 통해 게이트키퍼를 사전 지정하고 강력한 행위 규제를 도입한 이후, 미국과 유럽 간에도 유사한 통상·외교적 논쟁을 촉발했다. 한국 역시 EU의 제도를 단순히 모방하기보다, DMA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집행 부담과 국제적 마찰을 교훈 삼아 자국 실정과 통상 환경에 부합하는 조정된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법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위법 행위 발생 시 신속하고 실효적인 사후 제재를 강화하거나 지정 기준을 매출 규모뿐 아니라 시장 영향력, 이용자 의존도 등으로 다층화해 표적 규제 논란을 줄일 수 있다.

둘째, 국내외 기업 간 규제 형평성을 제도와 집행 양면에서 분명히 해야 한다. 법률 문언상 중립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 집행 과정에서 국적과 무관하게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신뢰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 플랫폼에 대해서도 국내 기업과 동등한 소비자 보호, 데이터 책임, 공정거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집행함으로써 규제의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

셋째, 디지털 입법을 순수한 국내 규제 사안이 아닌 핵심 통상 현안으로 인식하고 한미 간 상시 협력 채널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입법의 초기 단계부터 미국 통상 당국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제도의 취지와 적용 범위를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국내외 기업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청회, 의견수렴 절차를 실질적으로 운영해 제도 설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표현의 자유와 플랫폼 책임 간의 균형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대응은 민주주의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나, 과도한 모니터링 의무는 플랫폼의 과잉 대응과 사적 검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콘텐츠의 직접적 사전 검열보다는 투명성 보고, 알고리즘 운영에 대한 설명 책임, 자율적 대응 체계의 고도화 등 절차적 의무를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글로벌 인권 기준과도 부합하는 방향이다.

디지털 경제의 공정성을 확립하려는 입법 취지는 정당하다. 그러나 우방국과의 통상 신뢰를 훼손하는 방식의 규제는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선택지를 좁힐 수 있다. 공정 경쟁의 가치와 한미 동맹의 신뢰를 함께 지켜내는 절제되고 전략적인 제도 설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조원경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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