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지난해 극장을 찾은 관람객 수는 1억608만 명에 그쳤다. 연합뉴스
충무로에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종료 3년이 지났지만 연간 관객 수는 1억명 '박스권'에 갇혀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숏폼에 익숙해진 관객은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를 따지며 냉정하게 돌아섰다. 투자까지 얼어붙은 한국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선 처절한 자기 객관화와 구조조정, 즉 '다이어트'가 불가피하다.
위기의 본질은 '고비용 저효율'이다. 제작비 200억원 이상의 텐트폴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전략은 승률이 처참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업 영화의 손익분기점 달성률은 20% 초반까지 떨어졌다. 열 편 중 여덟 편이 실패한 셈이다. '1000만 영화'의 착시가 걷히자 시장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해법은 무너진 '허리'의 복원이다. 이하영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은 "생태계 유지를 위해선 연간 최소 쉰 편의 라인업이 필요하다"며 "한정된 자본 안에서 10·20대를 겨냥한 장르물 등 '스마트 기획'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도별 극장 관객 수 및 매출액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김지희 문화체육관광부 영상방송콘텐츠산업과장은 "중예산 영화의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해 공적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며 "올해부터 순제작비 20억~100억원 사이의 '강소 영화' 18편 내외를 선정해 총 200억원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몸집 줄이기'의 걸림돌은 경직된 비용 구조다. 주 52시간제 정착으로 과거처럼 스태프의 '헝그리 정신'에 기대 비용을 줄이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촬영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뛰는 구조를 깰 열쇠로 인공지능(AI)이 주목받는 이유다.
특히 사전 제작 단계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해 동선을 시뮬레이션하면 현장의 버리는 시간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 송재원 덱스터스튜디오 연구개발(R&D) 소장은 "단순 반복 작업은 AI에 맡기고, 창작자는 퀄리티 향상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촬영 현장
이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와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조영신 동국대 미디어연구소 대우교수는 "노조 이슈로 속도가 더딘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은 유연한 도입이 가능하다"며 "AI라는 새로운 출발선에서 '퍼스트 무버' 전략을 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제작 비용을 줄여도 상영 창구가 무너지면 공염불이다. OTT 이탈을 막기 위한 '홀드백' 규제 논의가 뜨겁지만, 본질은 '대체 불가능한 경험' 제공에 있다.
스마트폰으로는 구현되지 않는 특수관(IMAX 등) 포맷과 팬덤 비즈니스 결합이 시급하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 담당은 "극장이 시청각적 쾌감과 굿즈 등 팬덤 문화를 연결해 '공감의 광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적별 영화 매출·관객 점유율
2026년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거품을 뺀 기획, AI 기반의 공정 혁신, 압도적 극장 경험. 이 세 가지가 맞물리지 않는다면 스크린의 암전은 한동안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