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이혜훈 적격성, 청문회에서 가려야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발탁은 처음부터 환영받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야당은 이를 위협으로 여겼고, 격앙된 반응이 이어졌다. 한나라당 정책조정위원장 출신에게 이재명 정부의 '나라 곳간'을 맡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혜훈 후보자는 서울 서초구갑 지역구 3선 의원 출신이다. 부촌으로 유명한 반포동 초고가 아파트 단지와 방배동 서래마을이 속한 지역구에서 12년을 국회의원으로 지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명문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역임했다. 주류의 삶을 살아온 보수 인사의 민주당 정부 합류는 국민의힘에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도 첫 반응은 떨떠름했다. 삶의 궤적이 이재명 정부와 어울린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20년이 넘는 정치 인생에서 그의 시선은 줄곧 보수정당에 있었다. 재난기본소득을 비판하며 선별복지 소신을 밝히는 등 민주당과는 결이 다른 정책 행보를 이어왔다. '윤어게인' 발언 논란은 정치적 지향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한 연극 '환생경제' 출연 전력도 민주당 지지층이 그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이유다.

다만 그의 이력과 발언 논란이 장관 적격성 판단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여야 내부 정서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감정의 소음을 걷어내야 본질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환영받기 어려운 선택임을 알면서도 이런 인사를 단행한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권한을 가졌다고 그 사회를 통째로 다 파랗게 만들 순 없다"는 이 대통령의 최근 국무회의 발언은 곱씹어볼 만하다.

우리 사회가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언제든 내 편이 될 사람만 중용한다면 수많은 인재가 국가의 주요 인력풀에서 배제된다. 진보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유능한 보수 인사를 과감히 발탁하는 관행이 정착돼야 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이는 보수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파보다 역량을 중시하는 인사의 대원칙이 상식처럼 뿌리내려야 한다.

나라 곳간을 책임질 기획예산처 장관은 막중한 자리다. 이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자신이 적임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청문회 과정은 혹독할 수밖에 없다. 아니, 혹독해야 한다. 검증이 엄정할수록 그 결과에는 오히려 명분이 실린다.

도덕성 검증 역시 피해서는 안 된다.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허심탄회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청문회가 사생활 캐기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후보자와 가족을 탈탈 털어 망신 주는 데 집중하는 청문회는 근절돼야 할 악습이다.

그보다는 재정 운용에 대한 인식과 재정 독립성에 관한 철학을 살펴야 한다. 나라 곳간을 맡길 역량이 있는지, 최고 권력 앞에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강단을 갖췄는지를 따지는 자리가 돼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환영받지 못했던 처음의 선택은 재평가받을 수 있다. 기획예산처 장관으로서 공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면, 인재 발탁의 기준을 넓히는 계기이자,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정치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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