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정일웅기자
"날고 기는 범죄 수법에 대응하려면 별수 있나요. 발로 뛰는 건 기본이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죠." 관세청 서울본부세관 조사총괄과 양도열 수사팀장(43)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서울본부세관 조사총괄과 양도열 수사팀장. 관세청 제공
양 팀장은 수사업무만 13년째 맡고 있다. 현장에서는 수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으로 통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능·다변화하는 범죄 수법에 양 팀장조차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 더욱이 금융권, 지식재산 등 다른 기관 영역과 중첩되는 범죄를 수사할 때는 어김없이 관련 자료를 뒤적이며 공부하는 날들이 늘어난다.
양 팀장은 "관세청 특사경은 통상 국경단계에서 벌어지는 마약·외환·지식재산권(IP) 등 범죄 관련 수사를 맡는다"며 "범인을 찾아 검거하는 관점에서는 얼핏 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관세청 아닌 다른 기관의 업무 내용까지 이해하고 수사에 임해야 하는 까닭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도 제법 긴 시간 공부해야 할 때가 많다"고 웃어 보였다.
예컨대 양 팀장이 이끄는 수사팀은 올해 수출 목적국을 허위로 신고해 정상 업체의 철강 쿼터(2300억원 규모)를 가로챈 부정 수출업체를 적발했다. 한국에서 유럽연합(EU)으로 통관돼 수출된 철강 물량이 실제 EU가 집계한 한국산 철강 수입 물량보다 많다는 점에 주목해 수사에 착수, 배정된 철강 쿼터를 불법적으로 편취한 부정 수출업체를 검거한 것이다.
수사팀은 업체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EU 국가와의 수출계약서, 인보이스 등 핵심 증거를 확보한 후 EU 세관의 수출입자료와 한국철강협회의 수출 승인 자료 등을 연계·분석하는 방식으로 범죄 혐의를 입증했다. 업체는 '수출업무 과정 매뉴얼'까지 만들어 공유했고 이를 토대로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편법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단순 사건처럼 보이지만 속살을 들여다봐야 하는 수사팀 입장에선 공부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범인을 찾아 검거한다'는 함축적 공식이다. 하지만 이 공식이 실제 성립하기 위해선 범인의 궤적을 쫓아 범행에 이용된 수법과 관련 분야 지식(범죄 성립·적용 여부)을 함께 이해하는 일종의 풀이 과정이 필요하다. 관세청 특사경이 새로운 사건을 맡을 때마다 열공하는 이유다.
서울본부세관 조사총괄과 양도열 수사팀장(왼쪽 세 번째)과 팀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관세청 제공
영화나 드라마 속 형사처럼 미행과 잠복이 일상화된 양 팀장에게 특사경과 경찰 수사관의 간극은 크지 않다. 범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2대 이상의 차량으로 번갈아가며 미행을 하고, 몇 날 며칠 혹은 수개월 간 범행 현장에 잠복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팀원들 사이에서는 "내가 형사다"라는 말들이 자연스레 오간다.
양 팀장은 "올해 우리 수사팀은 강남 한복판에 생활거점을 둔 담배 밀수조직을 검거했다"며 "이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팀은 수개월에 걸쳐 의심 창고 주변에 잠복하고 보세운송 차량 미행과 CCTV 분석을 반복해 결국 담배 밀수입 관련자들을 특정·검거했다"고 말했다.
외국에 수출한 담배를 부산항으로 재반입한 후 인천공항으로 보세운송하는 과정에서 반송 수출 담배로 위장, 주말 야간 시간대에 몰래 비밀창고로 옮겨 국내에 유통하려 한 것이 사건의 개요다. 수사팀은 이 사건 해결로 담배 175만갑(시가 73억원)이 국내에서 불법 유통되는 것을 막았다.
양 팀장은 "수사팀이 적발한 담배 밀수사건의 특징은 범죄조직의 뿌리가 공항·항만이 아닌 서울 한복판이었다는 점과 총책이 동종전과를 가진 '재범'이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또 "서울 내륙에서 대규모 밀수조직을 뿌리째 적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사례"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국경은 공항·항만에만 있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관세청 특사경은 형사처럼 몸으로 사건 현장을 누비는 동시에 날고 긴다는 범죄자를 적발하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조직"이라며 "때때로 수사 과정이 고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와중에 국경단계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해결한다'는 자부심으로 특사경 구성원 모두가 현재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한편 양 팀장이 이끄는 서울세관 조사1국 조사총괄과 수사1팀은 올해 관세청이 선정한 '우수수사팀'에 선정됐다. 관세청은 수사 분야별 단속실적을 평가해 우수수사팀을 선정하고 우수 수사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조사업무 활성화를 도모한다. 올해 우수수사팀은 지난해 11월~올해 10월 중 평가 등록된 종결사 건을 대상으로 심사해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