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전남의 ‘서울-제주 고속철’ 독자 행보…‘제주 패싱’ 논란

지난 17일 국회서 완도·해남 주도 대토론회
"비행기로 1시간, 고속철은 4시간 반 소요"
"섬의 가치는 '단절'에서 오는 희소성"
유로터널 파산·KTX 공주역 교훈 되새겨야

서울-제주 고속철 이미지. 박창원 기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박지원 의원(해남·완도·진도)과 완도·해남군이 주도한 '서울-제주 고속철도(JTX) 대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지방 소멸을 막을 동아줄"이라며 조속한 국가 계획 반영을 촉구하며 무려 27조 4,000억 원 총사업비를 공개했다.

이들은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태풍·폭설 등 기상 악화 시에도 항공·선박 결항 걱정 없는 안정적인 이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제주산 농수산물을 수도권으로 대량·신속 운송할 수 있어 물류비 절감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바다 건너 제주의 시각은 싸늘하다.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할뿐더러, 제주가 가진 '섬의 정체성'마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27조 원짜리 열차가 안고 있는 경제적 타당성과 제주도민들이 느끼는 정서적 거부감을 짚어봤다.

제주 노선은 세계적인 저비용항공사(LCC) 들의 각축장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평일 비수기 기준 2~3만 원대 티켓이 흔한 상황에서, 서울에서 목포·완도를 거쳐 해저터널을 통과해 4시간(예상)이나 걸리는 고속철을 탈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재정 전문가들은 제주 지역 대형 인프라 사업의 민자 유치 방식에 우려를 표해왔다. 문성유 전 캠코 사장 역시 지난해 기고를 통해 민자 사업(BTO)의 구조적 한계와 이용객의 요금 부담 전가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이는 20조 원이 넘는 고속철도 사업에서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실제로 교통 전문가들은 민자 사업자의 수익성을 고려할 때 편도 운임이 15만 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하는데, 이는 3~5만 원대인 LCC(저비용항공사) 요금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시간은 4배 더 걸리면서 요금은 3배 더 비싼, 이른바 '비효율의 역설'을 안고 있는 교통수단이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힘들겠다는 냉정한 진단이다.

경제성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주의 정체성이다. 관광 전문가들은 "제주 관광의 핵심 경쟁력은 육지와 떨어져 있다는 '단절'에서 오는 희소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성유 전 사장 역시 최근 기고를 통해 "해저터널이 필요한지는 제주도민이 주체가 되어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육지부의 논리에 의해 제주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을 강하게 경계했다. 도민 사회에서는 고속철로 연결되어 제주가 육지의 연장선이 되는 순간, 섬 고유의 신비감은 사라지고 한반도 남단의 흔한 지방 도시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주도민 A씨(45)는 "기차 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제주에 도착하는 게 목포나 부산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육지화(陸地化)는 제주의 고유한 매력을 반감시킬 것"이라고 성토했다.

전남은 완도·해남의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지만, 전문가들은 '실패한 인프라의 역사'를 경고한다.

해외 사례로 유로터널(영-불 해저터널)은 1994년 개통 후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과 LCC(라이언에어 등)와의 경쟁 패배로 파산 위기를 겪었으며, 초기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봤다.

국내에서는 KTX 공주역이 호남고속철 개통과 함께 문을 열었지만, 연계 콘텐츠 부족으로 하루 이용객이 수백 명에 그치는 '유령역'이 됐다.

제주대 김영민 교수는 이를 '빨대 효과(Straw Effect)'로 설명한다. "고속철은 목적지 지향성이 강해 중간 경유지(완도)는 패싱(Passing) 당할 확률이 높다. 기차에서 내릴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없으면 완도에 내려 밥을 먹기보다 열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제주로 직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주시내 전경. 박창원 기자

국회 토론회는 전남의, 전남에 의한 행사였을 뿐 제주의 목소리는 없었다. 27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 LCC 대비 떨어지는 경쟁력, 그리고 "바다를 건너는 낭만을 뺏지 말라"는 제주도민의 정서적 저항까지. 전남의 'JTX 속도전' 앞에 놓인 걸림돌은 너무나 높고 단단해 보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전남이 제주의 이름을 빌려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제주도민은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현시점에서 해저터널 논의는 부적절하며, 제2공항 건설이 최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섬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기 결정권'은 제주도민에게 있다는 원칙이다.

이날 국회 토론회는 전남의, 전남에 의한 행사였을 뿐 제주의 목소리는 없었다. 27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 LCC 대비 떨어지는 경쟁력, 그리고 "바다를 건너는 낭만을 뺏지 말라"는 제주도민의 정서적 저항까지. 전남의 'JTX 속도전' 앞에 놓인 걸림돌은 너무나 높고 단단해 보인다.

호남팀 호남취재본부 박창원 기자 capta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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