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취재본부 박창원기자
박창원 호남취재본부 국장.
제주 4·3의 아픈 역사 속에서 최근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자격 논란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대통령의 지시와 행정적 검토가 이어지는 지금, '우리 사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은 특정 진영의 목소리나 일시적인 여론의 흐름이 아니라, 오직 객관적인 사실과 검증된 증거를 바탕으로 역사를 직시하는 일이다.
정부가 발간한 공식 기록인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명시된 사망자 통계는 현재 형성된 여론의 흐름에 반하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희생자 중 무려 86%에 달하는 1만 2,377명은 박 대령이 암살된 이후에 목숨을 잃었다.
박 대령이 제주 제9연대장으로 재임했던 기간은 단 43일이다.
이 기간 발생한 사망자는 200명 내외이며, 그중 실제 군과의 교전 중 사망한 인원은 25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4·3의 가장 참혹한 지점으로 꼽히는 '초토화 작전'과 대량 학살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43일간의 짧은 재임 기록을 두고 전체 비극의 '주동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과연 증거에 기반한 공정한 역사 평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론이 박 대령을 비판하는 근거는 대개 대척점에 섰던 인물의 전언일 뿐,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여론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또 다른 실증적 증언이 있다. 당시 소대장으로서 박 대령을 보필했던 채명신 파월 사령관의 회고다.
채명신 장군은 사후에 "나를 파월 부하들 곁에 묻어달라"며 장군 묘역 안장을 거부하고 사병 묘역에 안치된 최초의 장성으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군인과 국민에게 참군인의 표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런 채 장군이 생전에 가장 존경하는 지휘관으로 꼽았던 이가 바로 박진경 대령이었다.
채 장군은 박 대령이 "제주도민은 우리 동포이므로 무장대와 민간인을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시했음을 증언했다. 훗날 베트남전에서 "백 명의 적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철학으로 세계를 감동하게 한 채 장군의 지휘 철학이 사실은 제주 시절 박 대령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한쪽의 전언은 객관적 사실로 되고, 사병 묘역에 잠든 장군의 실존하는 증언은 외면받고 있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최근의 여론 지형은 사실관계의 입체적 확인보다 특정 프레임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국가유공자 자격이라는 엄중한 사안은 대중의 정서나 시류에 휩쓸리기보다, 법치주의에 입각한 명확한 증거와 공정한 역사적 해석 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전언이 기록된 증거가 말하는 진실을 압도할 때, 역사는 단죄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제주 4·3은 우리 민족의 거대한 비극이며, 그 희생자들의 아픔은 무엇으로도 씻기 어렵다. 그러나 그 비극을 정리하는 과정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
박진경 대령을 둘러싼 논란이 단순한 자격 취소 여부를 넘어, 우리 현대사를 확실한 증거와 기록을 통해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성숙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제주 4·3의 진정한 명예 회복은 감정의 승리가 아닌, 흔들리지 않는 증거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