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길기자
장희준기자
전영주기자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넘어서자 기업들이 외화 매출 운용부터 조달·투자 전략까지 전반을 재점검하며 외환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달러 결제 비중이 높은 항공업계는 환 손실 확대 우려 속에 통화 다변화와 환 헤지 전략을 강화하고 있고 전자업계 역시 부품 조달 구조와 설비 투자 시점을 조정하며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 협조를 요청한 가운데 기업들은 보유 외화 운용과 환율 변동성 관리 방안을 놓고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19일 대한항공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480억원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따라 올해 환 손실 규모가 장부상 5000억원대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등 주요 비용을 대부분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에서 환율 상승이 손익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환율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항공사들은 통화 다변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1월 330억엔 규모 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9월에는 3억달러 규모 유로화 채권을 발행했다. 지난달에는 사상 처음으로 스위스프랑 채권을 발행해 1800억원을 조달했으며 조달 자금은 달러로 환전하지 않고 현지에서 직접 사용할 예정이다.
유류비·정비비 같은 주요 영업비용을 달러로 결제할 때 환 손실을 줄일 수 있도록 통화선도 계약도 이어가고 있다. 통화선도란 외화를 미리 정한 환율로 만기일에 매입하는 계약을 말한다. 올해 3분기 말 달러 기준 통화선도 거래의 잔액은 2000만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300억원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자금기획팀 소속 리스크 관리 담당 임직원 5명이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원화 고정금리 차입은 물론 엔화·유로화 같은 저금리 통화의 고정금리 차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전자업계 역시 조달 구조와 투자 시점을 조정하며 환율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대응은 달러 거래에 치우친 구조를 완화하고 국가별 통화 조건을 고려해 부품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이라며 "당장 생산에 투입해야 하는 핵심 부품은 대체가 어렵지만 도입 시점을 조절할 수 있는 대형 장비나 투자는 최대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환율 상승은 수출 사업의 외화 매출에는 일부 긍정적이지만 제조 원가와 물류비 등이 동시에 커져 재무 구조 전반에 압박으로 작용한다. 특히 내년 해외 투자 등 중장기 사업 계획을 앞둔 상황에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며 불확실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대규모 해외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시기에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거나 출렁이면 손실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워진다"며 "환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서둘러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고환율에 대응하기 위해 환 헤지(hedge·위험회피) 비율을 늘리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수출입 등 경상거래와 자금 거래 시 임금 및 지출 통화를 일치시켜 환포지션 발생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또 외화 자산과 외화 부채를 비슷하게 맞춤으로써 이익과 손실 규모를 서로 상쇄해 환율 변동을 최소화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이) 선물환을 매도하면 이를 매수한 은행이 달러 현물을 팔게 되는 만큼 원·달러 환율이 높을 때 단기적으로 시장이 안정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환 헤지 비율을 늘리는 쪽으로 검토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7대 수출기업을 불러 모아 외환시장 안정화에 협조를 요청, 기업들은 해외유보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누적 기준 기업 해외유보금은 1144억달러(약 169조)로 역대 최대 규모다. 수출기업 관계자는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데 현지 법인에서 임금을 줘야 하고 투자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 송금할 유인은 크지 않다"면서 "정부 요청이 있었던 만큼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