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한국형 세대 보호법'이 필요한 시점

호주가 세계 최초로 아동·청소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접속 금지를 법적으로 의무화했다. 일종의 '세대 보호법'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후 SNS 계정을 갖는 순간부터 빠지는 '알고리즘 지옥'에서 알파세대(2010년대 이후 출생)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다.

시행 열흘째, 과도한 조치라는 비난과 함께 기대감은 여전하다.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우회 접속하거나 규제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방법이 늘고 있다는 현지 보도에도 호주의 실험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SNS가 청소년에게 자존감 저하, 신체 이미지 악화, 자살 충동 증가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은 차고 넘친다. SNS에서 말다툼을 벌인 학생 간의 칼부림, 불법 도박, 부모를 대상으로 한 폭행은 한국의 현실이다. 지난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 피해 1187건 중 960건이 채팅 애플리케이션(앱)과 SNS에서 발생했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의 전 연령 기준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최상위권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늦은 감이 있다. 인공지능(AI) 강국, 디지털 인프라 세계 1위라는 타이틀에 심취해 단계별 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한 결과다.

'셧다운' 수준의 강력 규제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16세 미만 이용자의 계정을 막지 못한 SNS 플랫폼에 최대 480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호주의 조치를 우리가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부모들이야 환영하겠지만 규제 밖 음지를 찾아갈 아이들을 생각하면 금지보단 '설계'에 맞춰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간한 '청소년의 스마트폰·소셜미디어 이용 제한 논의와 교육적 시사점'에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담겼다. 스마트폰 이용 규제에 앞서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디지털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선언적 문구로 비칠 수 있으나 청소년이 디지털 환경에서 스스로 위험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필요하다면 교과에 정보 판단력, 온라인 윤리, 자기 통제력을 키울 수 있는 과정을 담아야 한다. 교사들 역시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정보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각 플랫폼과 연령 확인 강화를 통한 가입 제한이나 부모 동의 의무화, 미성년자 노출 최소화를 위한 알고리즘 조정, 야간 접속 제한, 자동 휴식 시스템 등의 조치도 논의해야 한다. SNS 플랫폼을 타깃으로 한 규제로 보일 수 있으나 이제는 개인과 가정, 학교에만 맡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알파세대 이후를 위해 관련 법을 손보는 것도 당장 해야 할 일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니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아동에게 정보를 제공할 때 부적절한 내용이 담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두루뭉술한 문구만 담겼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국회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 내년 3월부터 수업 중 스마트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기 사용 제한에 나선다고 한다. 제한 기준 등 법안을 실천할 방법은 각 학교가 학칙에 따라 자유롭게 정하라며 책임까지 친절하게 전가했다.

현 체제로는 학생 인권 문제, 세대 간 갈등으로 확전할 게 뻔하다. 청소년을 음지로 몰아넣지 않도록 플랫폼의 책임을 분명히 하되 법과 교육, 기술적 장치가 엮어진 설계가 필요하다. 늦었지만 가정과 학교, 기업, 정부가 함께하는 '한국형 세대 보호법'을 준비해야 한다.

사회부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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