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기자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식품·베이커리 업계의 케이크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고물가 기조 속에서도 연말 분위기를 즐기려는 소비 심리가 유지되면서 케이크는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연말 파티와 모임을 상징하는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업계는 한정 제품과 사전예약, 콘셉트형 케이크를 앞세워 연말 특수 잡기에 나섰다.
웨스틴 조선 부산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최근 케이크 시장의 큰 특징은 소비의 양극화다. 호텔 베이커리와 프리미엄 디저트 브랜드를 중심으로 고급 원료와 화려한 디자인을 강조한 고가 케이크가 주목받는 한편, 1~2인 가구 증가와 실속 소비 흐름에 맞춰 소형 케이크 수요도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대형 홀케이크 중심이던 과거와 달리 크기와 가격대가 세분화되며 소비 선택지는 넓어졌다는 평가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들은 연말 시즌 한정 제품으로 전통적인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딸기·생크림·초콜릿 등 대중적인 맛을 중심으로 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라인업을 확대하며 '연말 케이크의 표준'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투썸플레이스는 눈사람·산타 등 캐릭터 요소를 강조한 홀리데이 케이크 시리즈를 선보이며 젊은 소비층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수요를 동시에 겨냥했다.
카페 프랜차이즈와 편의점도 가세했다. 스타벅스코리아와 할리스는 홀케이크뿐 아니라 소형 케이크와 디저트를 함께 구성한 연말 기획 상품을 내놓으며 접근성을 높였고, CU·GS25 등 편의점은 1만 원 안팎의 미니 케이크와 조각 케이크로 '혼크리스마스'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반면 조선호텔, 롯데호텔, 신라호텔 등 호텔 베이커리는 샴페인, 고급 초콜릿, 수입 버터 등을 활용한 고가 케이크로 연말 파티용 프리미엄 수요를 공략 중이다.
투썸플레이스의 2025 홀리데이 시즌 케이크 라인업.
올해 케이크 대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변화는 비주얼 중심 경쟁의 심화다. SNS에 공유하기 좋은 디자인과 색감이 구매 판단에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케이크는 '먹는 상품'을 넘어 '찍고 보여주는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실제로 투썸플레이스의 캐릭터 케이크, 호텔 베이커리의 오브제형 케이크는 맛보다 디자인이 먼저 화제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전예약과 한정 판매 전략도 연말 케이크 시장의 핵심 구조로 굳어졌다. 호텔 베이커리는 물론 파리바게뜨 등 베이커리·카페 프랜차이즈 상당수가 예약 판매를 기본으로 운영하고 있고, 일부 프리미엄 제품은 예약 단계에서 조기 품절되기도 한다. 수요 예측과 제조 효율 측면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불만도 나온다.
이처럼 크리스마스 케이크 경쟁이 해마다 과열되면서 가격 부담과 구조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커지고 있다. 주요 프랜차이즈와 호텔 베이커리의 홀케이크 가격은 5만~10만원대를 넘기는 경우가 흔해졌고, 최근 신라호텔은 50만원짜리 트러플 케이크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업계는 원재료 가격 상승과 인건비 부담, 디자인·마케팅 비용 증가를 이유로 들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케이크 자체보다 연말 분위기 비용을 지불하는 느낌"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신라호텔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 케이크.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는 연말 시즌에 과도하게 집중된 수요 구조가 꼽힌다. 케이크 판매가 크리스마스에 지나치게 몰리면서 업체들은 단기간에 높은 매출을 내기 위해 고단가 제품과 한정판 전략에 의존하게 됐다. 이는 자연스럽게 가격 상승과 비주얼 경쟁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키우는 구조를 만든다는 분석이다.
SNS 중심의 마케팅 환경도 한몫한다. 케이크가 '맛있는 디저트'가 아니라 '보여줘야 하는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실제 맛과 완성도보다는 디자인과 화제성이 우선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장식이 과도해 보관이나 절단이 어렵고, 가격과 기대에 비해 맛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소비자 후기가 반복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환경 부담 역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 포장 박스, 일회성 장식 소품, 플라스틱 피겨 등의 사용이 늘어나며 크리스마스 케이크 소비가 환경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브랜드가 친환경 포장이나 장식 최소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업계 안팎에서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경쟁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인 화제성과 고가 전략에서 벗어나 가격 대비 만족도와 경험의 설득력을 어떻게 높일지가 관건"이라며 "누가 더 화려한 제품을 내놓느냐가 아니라 소비자가 그 가격과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얼마나 명확하게 제시하느냐가 장기적인 케이크 대전의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