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기기자
고려대 앞 명물 '영철버거'를 운영했던 이영철씨가 별세한 가운데 고려대 학생과 졸업생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별세한 '영철버거' 대표 이영철씨. 고려대뉴스
15일 이씨의 모바일 부고장에는 1400건이 넘는 조문 메시지가 등록됐다. 한 추모자는 "한동안 울음을 참을 수 없어 혼자 울었다"며 "10월에도 방문했었는데 아프신 기색은 전혀 없었다.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적었다. 이어 "맛있는 안주와 맥주, 서빙해주시던 사장님 모습이 너무 그립다"고 했다.
또 다른 추모자는 자신이 최근 결혼을 앞두고 이씨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며 "언제라도 가게에 가면 밝게 맞아주시고, 바쁘지 않으실 때는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눌 것만 같았다"고 했다. 그는 "박사과정을 마치면 꼭 찾아뵙고 근황을 전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며 "항상 가게를 나설 때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던 모습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았다"고 덧붙였다.
'고대21'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메시지에는 "타 대학 친구에게 고려대 명물이라 자랑하며 사줬던 기억, 강의가 끝나고 야구장에 포장해 갔던 기억까지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1000원짜리 '영철버거'를 고려대 명물로 일궈낸 이영철씨가 지난 13일 별세했다. 향년 58세. 연합뉴스
자신을 14학번이라고 밝힌 졸업생은 "이공캠(이공계 캠퍼스)에서 공부하던 시절 종종 영철버거에 들러 주문을 외치던 학생"이라며 글을 남겼다. 그는 "1905버거를 1905원에 팔던 시절 처음 영철버거를 알게 됐고, 이후 하나스퀘어에서 공부하며 자주 찾았다"며 "고파스(고려대 커뮤니티) 무료 나눔 행사 때마다 사장님이 사비를 보태 버거를 넉넉히 나눠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 그 따뜻함을 본받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며 "마지막 길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적었다.
한 추모자는 2000년 초반 손수레를 끌고 장사하던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추모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추모자는 "2000년쯤 리어카에서 장사를 시작하셨을 때만 해도 30대 초반의 젊은 사장님이었고, 당시 고학번 학생들과도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학생들이 1000원만 내고 버거와 콜라를 여러 잔 먹는 모습을 보며 이게 남는 장사인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 시절 저학번이던 학생들조차 50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며 "황망한 이별이 안타깝지만, 성실하고 친절하며 베푸는 것을 좋아하셨던 사장님의 생전 모습을 먼저 기억하고 싶다"고 적었다.
이씨는 지난 13일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
그는 2000년 무렵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수중에 단돈 2만2000원만 남은 상황에서 고려대 앞에 손수레를 놓고 1000원짜리 버거를 팔기 시작했다. 핫도그 빵 사이에 고기볶음과 양배추, 소스를 넣은 투박한 '스트리트 버거'였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들의 허기를 채우며 '고려대 명물'이 됐다.
이후 가게를 차린 그는 2005년 무렵 40여 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돼지고기를 등심으로 바꾸면서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고,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버거 한 개당 200원의 적자가 나던 시기에도 1000원 가격을 지켰다.
2004년부터는 매년 2000만원씩 고려대에 기부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영철 장학금'을 조성했고, 정기 축제에는 영철버거 수천 개를 무료로 나누며 학생들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인근 상권 경쟁 속 메뉴 고급화 등을 시도하다 재정난을 겪었고 2015년 결국 폐업했다. 이에 고려대 학생들은 '영철버거 살리기'에 나섰다. 당시 '영철버거 크라우드펀딩'에는 2579명이 참여했으며, 목표액 800만원은 하루 만에 달성됐다. 한 달 동안 모인 금액은 6811만5000원에 달했고, 이는 가게 보증금 등 재개장의 종잣돈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