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기자
"이번 투표 결과는 1990년 군부 독재 종식 이후 칠레가 가장 급격한 우경화를 겪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4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대통령 결선투표를 앞두고 이주민 유권자가 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는 14일(현지시간) 인구 약 2000만명의 칠레에서 임기 4년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결선투표가 실시됐다고 전하며 이같이 보도했다. 유권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각 투표소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올해 칠레 대선은 군부 독재 종식 이후 처음으로 유권자 명부 자동 등재에 따른 의무 투표제로 치러졌으며, 이로 인해 유권자 수는 기존보다 약 500만 명 늘어났다.
이번 결선 투표에서는 극우 성향의 공화당을 창당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와, 집권 좌파 정부 연정의 후보로 공산당 소속인 히아네트 하라 후보가 맞붙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11월 1차 투표에서 히라 후보는 26.85%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고, 카스트 후보는 여러 우파 후보들을 제치고 23.92%로 2위에 올랐다.
칠레 공산당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중도좌파 성향 여당의 지지를 받는 후보로 나선 히아네트 하라 후보는 가브리엘 보리치 현 정부에서 노동·사회보장부 장관(2022~2025년)을 지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자 권리 강화, 국영 리튬 회사의 역할 확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두 차례 대선에서 낙선한 뒤(2017·2021년) 다시 대권에 도전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 군부 정권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카스트 후보는 불법(서류 미비) 이민자 대량 추방과 대규모 교도소 건설, 리튬 산업 민영화 등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엘 메르쿠리오·라테르세라·비오비오 칠레 등 현지 언론은 극우주의자라고도 묘사되는 카스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우파 후보들을 지지했던 유권자 상당수가 카스트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칠레는 여전히 중남미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히지만, 최근 조직범죄와 이민자 유입 증가로 유권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며 치안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실제 살인율은 2015년 인구 10만 명당 2.32명에서 2024년 6.0명으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2024년 납치 사건은 868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칠레 검찰청은 이 가운데 약 40%가 조직범죄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범죄 급증은 베네수엘라 이민자 유입 급증과 맞물려 나타났다. 통계에 따르면 칠레 내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는 2017년 8만2998명에서 2024년 66만9408명으로 늘었다. 이민에 대한 반발은 이런 범죄 논쟁과 맞물려 더욱 심화됐다.
불평등 해소와 새 헌법 제정을 내걸고 집권한 보리치 대통령에게 범죄와 치안 문제는 임기 내내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카스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중남미 전역에서 포착되는 우파 집권 흐름인 '블루 타이드(Blue Tide)'가 더욱 선명해질 전망이다. 블루 타이드란 최근 중남미에서 좌파 중심의 정치 흐름이 약화되고, 우파·중도보수 성향 정권이 잇따라 집권하는 현상을 뜻한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 파라과이, 볼리비아 등에서 중도·보수 성향 정권이 잇따라 들어서며 이러한 정치적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