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뉴욕 코믹콘 웹툰 엔터 전시관 앞의 관람객 연합뉴스
국내 웹툰 산업은 지난 6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콘텐츠 분야다. 시장 규모가 2017년 3799억원에서 지난해 2조원을 넘어섰다. 플랫폼의 해외 진출로 글로벌 독자를 확보했고, 영상·게임 등 2차 저작물 확장도 본격화했다.
외형만 보면 한국 웹툰은 이미 국제 경쟁력을 갖춘 수출 산업이다. 2023년 만화 수출액은 전년 대비 63% 증가한 1억7795만 달러로 집계됐다. 세계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확고한 점유율을 보였다.
그러나 산업의 근간인 제작 현장은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비대해진 제작비 구조다. 웹툰은 한 작가가 작업 대부분을 맡던 방식에서 벗어나 채색·배경·3D 모델링·스토리 설계 등으로 공정이 세분화됐다. 이에 따라 필요한 인력과 비용이 함께 늘어났다.
복잡해진 공정에 제작 기간은 6개월~1년에서 1~2년으로 길어졌고, 전체 비용의 약 90%가 인건비와 외주 용역비로 채워지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웹툰 시장은 흥행을 예측하기 어려워서 제작비가 커질수록 투자 판단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제작비 대부분이 회수가 어려운 고정비라는 점도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제작사 대표 A씨는 "제작비가 오를수록 기획 자체가 위축된다"며 "요즘은 기본 공정만 해도 투입해야 하는 인력이 늘어나 부담이 크고, 독자 눈높이까지 높아져 필수 비용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제작 기반이 취약한 산업 구조도 부담을 키운다. 국내 웹툰 사업체의 63%는 매출 10억원 미만, 88%는 100억원 미만이다. 대다수는 적자가 반복돼 법인세를 낼 상황이 아니다. 세액공제 제도가 있어도 현실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웹툰 전시장으로 변한 롯데월드몰 연합뉴스
수익 배분 구조 역시 제작사와 창작자의 재투자 여력을 약하게 한다. 웹툰이 OTT 시리즈로 제작될 경우 원천 IP 수익의 상당 부분이 플랫폼에 돌아간다. 제작사 관계자 B씨는 "시리즈가 흥행해도 실제로 손에 쥐는 몫이 적어 후속 시즌을 준비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조적 한계는 창작자들의 작업 환경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이 프리랜서나 사업소득자 신분으로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장기 작업에 따른 과로와 소진 위험이 되풀이된다.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미완성으로 끝날 경우 손실을 제작사가 떠안는 시장 구조도 새로운 시도를 어렵게 만들어 결국 수요가 검증된 장르로 쏠리는 현상을 낳는다.
이 복합적인 문제들을 풀기 위한 첫 단추는 제작 기반을 지탱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해외 주요국들은 조세지원을 핵심 정책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퀘벡이 최대 40% 환급형 세액공제를, 영국과 프랑스가 30% 안팎의 공제를 운영한다는 점은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책적 시차를 보여준다. 한국 웹툰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음에도, 제작 구조와 재투자 기반은 이에 맞춰 성장하지 못한 셈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웹툰 제작비에 대한 세액공제를 도입한다. 세액공제율은 대·중견기업 10%, 중소기업 15%다. 제작비 상승으로 무너진 재투자 선순환을 회복하고, 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일을 막겠다는 판단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월 19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만화·웹툰 분야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적자 기업이 많은 현 구조에서는 세액공제가 실제 적용되기 어려운 만큼 실효성을 높이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보고서 '웹툰 산업 조세지원 제도 개선 연구'는 영세 제작사도 활용할 수 있도록 환급형 등 공제 방식의 보완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염정완 콘진원 미래정책팀 선임연구원은 "수익 여부와 무관하게 유동성을 보완해 주는 환급형 공제가 병행돼야 실효성이 높아진다"며 "수익이 불안정한 영세 제작사에 즉각적인 현금 흐름을 제공해 투자 위험을 줄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 기반을 안정시키는 조세지원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