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성장엔진' 국민성장펀드 출범, 금융투자시장 여파는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 평가 들어보니
정부 주도 전략사업 대규모 지원은 '환영'
거버넌스, 자금조달, 소외섹터 양극화 우려

"투자에 목말라 있는 혁신·벤처기업들에 큰 성장 밑거름이 될 것이다."

"옥석 가리기가 관건이다. 농사 잘해보자고 물길을 닦았는데 농부가 아닌 수영장 사업자가 농사용 물을 받는 격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무려 150조원을 쏟아붓는 '국민성장펀드'가 본격 출범하면서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한다. 점점 격화하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역시 정부 주도의 대규모 전략사업 지원이 시급하다는 점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지만, 자금조달·옥석 가리기 난제부터 자칫 밸류에이션 거품이 시장에 미칠 부작용까지 각종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탓이다.

국민성장펀드 출범에 "벤처 생태계 마중물" 기대

12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공개된 국민성장펀드의 구체적인 투자방식은 직접투자(15조원), 간접투자(35조원),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및 융자(50조원), 초저리 대출(50조원) 등 네 가지로 분류된다. 정부는 이달 중 2026년 운용계획을 확정하고, 연초부터 본격적으로 자금 투자 결정을 한다는 방침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혁신·벤처 생태계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면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AI, 양자산업, 바이오 등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지금 못 쫓아가고 있다. 국민성장펀드 출범 자체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 역시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자금조달, 회사채 발행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증시 측면에서도 단기 투자심리엔 긍정적인 여파가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정책 모멘텀이 있는 업종, 기업의 주가는 우상향한다. 시장 관심이 높아지며 유동성이 집중되기 때문"이라며 "국민성장펀드 론칭은 단기 투심에 긍정적"이라고 봤다. 과거 녹색펀드, 통일펀드 등 정책성 펀드의 론칭 초기 성과를 살펴봐도 이러한 경향이 확인된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초기엔 중소형주보다는 각 산업 주도기업, 협력사 중심의 수혜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벤처캐피탈(VC) 업계는 국민성장펀드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일각에선 모태펀드 성장기 이후 두 번째 호황기가 될 것이란 분석마저 나올 정도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리스크를 분담하는 형태가 되면서 기존까지 VC가 기피하던 영역까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다만 초기 밸류에이션이 과대 평가된 기업에 자금이 쏠릴 경우 시장 왜곡, 과잉 유동성, 변동성 등 부작용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잇따른다. 이 연구위원은 "이는 뉴딜펀드 때도 제기된 우려"라며 "(심사 과정에서) 선을 잘 맞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VC를 둘러싼 모럴해저드 우려와 관련해서도 "VC가 직접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정책펀드가 들어가는 거라, 상대적으로 리스크는 낮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건은 '옥석 가리기'…자금조달 등에 의문도

관건은 150조원이라는 규모, 정부·민간·금융권이 얽힌 복잡한 구조 등을 고려한 효율적인 설계와 운용, 감독이다. 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자본의 크기가 커지는 것이 경제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대신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제대로 평가하고 자금이 엉뚱한 곳에 가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부터 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사를 잘 지으려고 수로를 만들고 물을 공급하는 것인데, 빨리 물부터 공급하려다 자칫 농부가 아닌 수영장 사업자에게 물이 지원될 수 있다는 게 그가 든 예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인 천준범 변호사는 "투자 결정과 사후 관리를 어떻게 객관적이고 철저히 할 것인지 세부 사항이 훨씬 더 큰 문제"라며 "정부, 금융, 산업계가 다 관여돼있는데 아무도 감독하지 않는다면 모럴해저드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이 연구위원 역시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투자처) 선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5년간 150조원이라는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두고도 물음표가 쏟아진다. 이는 정부보증채권 75조원과 민간자금 75조원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민간자금 유치를 위한 마중물 역할로 내년 예산에 반영된 재정은 1조원 수준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금은 어떻게 조달한다는 것이냐"고 질문부터 던졌다. 안 교수는 "산은채를 발행하겠다는 게 될 텐데 그럼 금리가 올라가고 채권시장에도 여파가 불가피하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시장 전반적 외부 파급효과를 지적했다. 증권가에는 앞서 산은채 중심 초우량물 발행 증가가 크레딧 시장 수급 노이즈로 작용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소외된 섹터에 대한 대응책 문제도 지적됐다. 안 교수는 "전략 분야가 아닌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한계기업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자금배치를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자금 조달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펀드 조성 과정에서 금융권 등에 (정부가) 점점 더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인데 이미 4대 은행이 10조원+a씩 투자 논의도 하지 않았냐. 결국 이는 그만큼 은행권 대출 여력은 줄어든다는 것"이라고 했다.

증권자본시장부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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