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조 시장 열린다 했지만…갈 길 먼 보험금청구권신탁

보험금청구권신탁 도입 10개월
삼성·교보 外 가입실적 미미
'상해·질병보험'도 신탁재산 인정 등 규제 완화해야

보험금청구권신탁이 나온 지 약 10개월이 됐지만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약 900조원 규모 시장이 열린다며 주목받았지만 일부 대형사 위주로만 상품 가입이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탁 대상 확대 등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삼성생명의 보험금청구권신탁 누적 계약은 780건, 누적 금액은 2570억원을 기록했다. 교보생명은 누적 계약 554건에 누적 금액 약 800억원에 달했다. 두 보험사를 제외하면 현재 보험금청구권신탁 계약 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다.

보험사가 보험금청구권신탁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활성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챗GPT가 묘사한 이미지. 챗GPT

보험금청구권신탁은 재산을 물려주는 피상속인이 자신의 사망보험금을 보험사 등 신탁사가 운용·관리하게 해 고객이 미리 설정한 조건과 시점에 따라 상속인(수익자)에게 주는 신탁상품이다. 지난해 11월 3000만원 이상인 일반 사망보험금도 신탁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관련 시장이 열렸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생명보험사 22곳의 사망 담보 계약 잔액은 약 882조원으로 이 규모만큼 시장 잠재력이 있는 셈이라 출범 당시 많은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보사가 보험금청구권신탁 도입에 미온적이다. 현재 종합재산신탁 업무를 할 수 있는 보험사는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미래에셋생명·흥국생명 등 5곳이다. 지난해 6월 교보생명이 종합재산신탁업 자격을 취득하면서 5사 체제가 굳어졌지만 보험금청구권신탁이 도입된 이후에도 추가로 종합재산신탁업 자격을 취득한 곳은 없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금청구권신탁 수수료가 높지 않아 차라리 같은 인력으로 보험상품을 하나 더 파는 게 낫다는 인식이 있다"며 "금융지주계열 보험사의 경우 은행이 신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조직을 키우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험금청구권신탁 활성화를 위해 추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로 거론되는 건 사망보험뿐 아니라 상해·질병보험금까지 신탁재산으로 인정하는 방안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를 시행 중이다. 지광운 국립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신탁대상을 질병·상해보험금까지 확대하고 최소 수탁금액 제한도 폐지해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신탁계약 시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이 없어야 한다는 조항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탁수익자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탁수익자를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사실혼이나 약혼, 동성혼 등 변화된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일본은 개인·단체 구분 없이 수익자를 인정한다. 자신이 원하면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나 학교·종교·사회단체 등에 자유롭게 자신의 보험금을 남길 수 있다.

보험금청구권신탁 권유 자격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현재 자본시장법상으로는 일정 자격이 있는 신탁투자권유대행인이 보험금청구권신탁을 판매할 수 있다. 지 교수는 "신탁투자권유대행인보다 간소화된 요건으로 자격제도를 마련해 보험설계사가 해당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생보협회 주관의 별도 자격시험과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금융부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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