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환기자
고든 리아오(Gordon Liao·왼쪽) 서클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8일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오른쪽)과 웨비나에서 대담하고 있다.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도입하면 더 많은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의 자본시장을 찾을 것으로 본다."
고든 리아오(Gordon Liao) 서클(Circle Internet Group)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8일 세계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웹세미나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부상과 글로벌 금융의 재편'을 주제로 발표하며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달러와 같은 특정 자산과 연동해 가치 안정성을 추구하는 가상자산이다. 달러 가치와 일대일 연동된 테더(USDT)와 USDC 등이 대표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최근 사용 범위가 가상자산 시장을 넘어서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기존 결제시스템과 결합해 일상적인 거래에서도 활용되는 등 사용이 확대되는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한국에서도 논의가 활발하다.
서클은 전세계 시가총액 2위의 스테이블 코인 USDC를 발행하는 회사다. 지난달 나스닥 상장 이후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며 한국의 투자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리아오 이코노미스트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재단 채권거래 담당, 연방준비제도(Fed) 정책자문 등을 역임했다.
리아오 이코노미스트는 스테이블 코인이 최근 전세계에서 큰 관심을 받는 이유로 편리성을 꼽았다. 그는 "기존의 해외 송금은 느리고 비싼데다 투명하지도 않았다"며 "만약 서울에서 뉴욕으로 실물 화폐를 송금하려면 며칠이 걸리고 비싼 수수료까지 지불해야 했지만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하면 단 몇 초 만에 저렴한 가격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뛰어난 접근성 역시 장점이다. 리아오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시간과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스테이블 코인 거래가 가능하다"며 "이는 환율 변동성이 큰 신흥국이나 은행 이용이 어려운 나라에서 매우 큰 이점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이 아닌 기업 입장에서도 스테이블 코인 사용에 따른 비용 절감과 새로운 투자 수익 창출의 기회를 찾을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90% 이상이 달러화로 거래되고 있지만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리아오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하버드재단에서 일할 때 현지 시장과 복잡한 규제 절차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 아시아 국가에 투자하는게 쉽지 않았다"며 "반면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도입해 한국 주식과 채권을 토큰화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으로 자본시장의 개방성이 늘고 투자 비용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만 존재한다면 달러에 대한 투기성 자금이 더 늘어나고 건강하지 못한 생태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에 대한 한국은행과 정부의 우려도 알고 있지만 적극적인 관리 감독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한은은 스테이블 코인이 금융 안정성을 해치고 자금세탁과 같은 불법 금융에 쓰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금융사가 아닌 비금융사까지 허용하게 한다면 금융시장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본다.
리아오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에서 우려하는 바는 알고 있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며 "스테이블 코인은 거래 자체가 투명하고 기술적으로 파악하기 쉽기 때문에 중앙은행과 정부가 규제를 제대로 수립하고 관리·감독하면 불법적인 사용은 충분히 차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아시아 무역의 매개가 되면서 서울이 홍콩과 싱가포르에 견주는 디지털자산의 허브가 될 수 있다"며 "잘 도입된 스테이블 코인은 전 세계 디지털 금융의 지형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