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섭정치스페셜리스트
나주석기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7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한국 정치와 관련해 "협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개헌에 대해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이번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추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 간 개헌 논의를 위한 정치협상위원회 등을 만들어 개헌에 대한 약속을 담보한 뒤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마치자"고 제안했다.
정 전 총리는 헌재가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것과 관련해 "순리대로 됐다"며 "정치는 민심에 역행할 수 없다는 교훈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소회를 밝혔다. 1995년 정계에 입문한 그는 6선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정당 대표 등을 역임하며 지난 30년간 한국 정치의 현장을 지켜봤던 인물이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 파국적 정치 상황이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 정 전 총리는 '협치'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면 대통령은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하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보니 대통령이 의회를 적대시하는 경우도 있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대통령 본인에게도 손해일 뿐 아니라 나라에도 해가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대통령이 의회를 존중하고 협치 노력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인 실천 해법으로 정 전 총리는 "영수 회담을 정례화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도 개선해 실효성 있게 바꾸는 등 협치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개헌은 결국 여야가 합의를 해야 하는데 당장은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대선 때 여야가 공감대를 만들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인터뷰하며 탄핵과 이후 정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다만 "과거에도 대선 후보들이 개헌을 약속했지만 (개헌이) 안 됐다"면서 공약 이행을 위해 정치협상위원회 설치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1987년 개헌 당시에도 여야는 여야 중진들이 '8인 정치회담'을 통해 합의안을 마련한 바 있다.
정 전 총리는 "개헌특위 소위일 수도 있고, 별도 기구로도 만들 수 있다"며 "여기에서 개헌 논의를 진행해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 전에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6월3일로 예정된 이번 대선과 관련해 "대선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정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거 전후로 대면과 전화 인터뷰 형식으로 두 차례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헌재 선고 이후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정치권이 자꾸 자기 진영을 키워 갈등을 부추기고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나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는 170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는데 헌재 결정 전까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선고 후에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노력을 해야지 부추기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지금도 정치권이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자제해야 한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있어왔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해 신기술 등이 미래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런 산업들을 두고서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아주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가 발목을 잡아서 AI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우리는 머물러 있는데 다른 경쟁자들은 앞다퉈 나가면 결국 우리는 후퇴하는 거 아닌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왔던 경쟁력, 이런 부분들이 훼손돼 대한민국 위상이 뒤처질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다.
정세균 전 총리는 지난 7일 아시아경제와 보충 인터뷰에서 "늦어도 지방선거 전에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영한 기자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정치가 빨리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정치가 회복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들께 걱정을 드렸지만 정치가 아니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지금 정치가 실종됐다고 하는데 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정치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같은 것들이 등장하고, 팬덤 등이 만들어지면서 갈등이 격화된 측면이 있다.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데, 요즘은 양 진영 간의 싸움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결국 각각의 진영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정 운영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입법부는 입법으로, 행정부는 국정 운영으로 각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 최근 연금개혁이 이뤄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야에 맡겨 놓으면 타협이 되는데 그동안 여당 뒤에 대통령이 있어서 안 됐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정치권 내 갈등을 줄일 수 있을까.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저는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국민통합을 말했지만 잘 안 됐다. 원인은 정치에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갈등을 조장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그런 문화에 빠져 있다. 정치인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지, 스스로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정치적 이득에 대한 유혹이 있더라도 이를 단절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은 어떻게 보고 있나.
▲걱정이 많다.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의 최강자였다. 지금은 그게 깨졌다. 깨져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깨졌다. 기업들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 우리가 앞섰다는 조선이나 반도체, IT 등에서 1등 하던 것들이 2등으로 처진 것이 많다. 특히 AI는 이제 이류다. 우리가 가졌던 기술력, 경쟁력과 관련된 부분이 중국에 뒤처지는 상황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 정치가 복원돼 경제가 전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앞으로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은.
▲지난 3년간 우리 정치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토대 위에서, 새 정권이 출범하면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통합과 미래 지향적인 정치가 이뤄져야 대한민국이 우상향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