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밥 주는 경로당, 30명 한 끼 예산 7만원 '빠듯'[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

[13-1]아파트 경로당에서 같이 먹으면 쓴 것도 달아

"집에 사는 노인들 끼니 해결" 취지로
‘주3일’ 점심, 지난해부터 ‘주5일’로 늘자
경로당마다 예산은 빠듯

"경로당서 밥 먹으니 약도 먹고 집에 사는 것"
"여기 밥 없었으면 요양원 갔을 거야"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남성아파트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기름때가 켜켜이 쌓인 철공소들이 줄지어 선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이곳에서 40년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 외벽의 빛이 바랠 대로 바랜 '南星'(남성)이라는 글자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합쳐서 390가구, 두 동뿐이다. 그 사이로 경로당이 터줏대감처럼 서 있다. 정오가 되자 단지 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낡은 경로당에 온기가 채워지는 시간이다.

‘주3일’ 점심, ‘주5일’로 늘자 예산 빠듯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남성아파트에서 민순덕 할머니와 황정규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마친 뒤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일주일에 닷새, 여기서 점심을 먹어. 혼자 있으면 물에 밥 말아 먹고 말 텐데 여기서는 한 끼 제대로 챙기는 거지. 덕분에 꼬박꼬박 약도 먹고. 그래서 이 나이에 혼자 집에서 살 수 있는 거야. 경로당에서 다 같이 먹으면 쓴 것도 달아."

식사를 하던 방미옥 할머니(81)가 구석에 있는 유선전화기를 쳐다봤다. 경로당 회장 민순덕 할머니(76)가 찰떡같이 알아채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점심 다 됐어요. 빨리 와요". 민 할머니는 "아픈 할머니가 한 분 있는데 정신을 자주 놓으셔. 밥때를 모르니까 전화를 해줘야 하거든. 곧 올 거야"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남성아파트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이날 반찬은 불고기와 시금치 무침, 고추장아찌, 미역국, 김치였다. 구청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오는 어르신도 있지만, 매일 서른 명 정도가 식사를 한다.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경로당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 점심밥을 차렸다. '집에 사는 노인들의 끼니를 해결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일주일에 다섯 번으로 늘린 건 그해 8월부터였다.

늘 그렇지만 예산이 문제다. 주 5회로 늘린 이후 경로당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경로당을 기준으로 주 3일 밥을 할 때는 시청 지원금 35만원, 구청 지원금 5만~75만원을 매달 받았다. 그런데 주 5일로 바뀌면서 시청 지원금만 47만원으로 늘었을 뿐 구청 지원금은 제자리다.

결국 경로당별로 한 달에 52만~122만원의 운영비를 지원받는 셈이다. 주 5일로 기준으로 계산하면 점심 한 끼 예산이 2만~6만원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식사 도우미 인건비도 대기 힘들다" "매주 한 끼씩 라면을 먹어야 한다"는 게 현장의 하소연이다. 지난해 10월 기준 주 5일 점심을 운영하는 서울시 경로당은 전체 경로당(3489개)의 약 50%(1694개)다.

그래도 남성아파트가 있는 영등포구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영등포구는 2년 전 경로당 중식 지원비를 대폭 늘렸다. 덕분에 남성아파트 경로당의 한 끼 예산은 7만원 정도 된다. 쌀은 보건복지부와 구에서 1년에 12포 보내준다.

끼니가 늘면서 경로당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총무 장길녀 할머니(76)가 분주해졌다. "한 달에 열두 번 밥을 할 때는 반찬 질도 좋고 간식도 사 먹고 풍족했어. 지금은 한 달에 밥을 스무 번 차려야 하니 허리띠를 졸라매야지. 식구가 많으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야채는 새벽마다 내가 영일시장에서 도매로 사와."

"여기 밥 없었으면 요양원 갔을 거야"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남성아파트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점심 식사를 하러 오는 어르신 중 할아버지는 열의 한 명이 될까말까다. 같은 아파트에서 수십 년 얼굴을 봐온 사이지만 할머니들과 섞이는 게 겸연쩍어 경로당 작은 방에 따로 상을 편다. "내가 독신생활 40년째야. 아침저녁은 삶은 계란이나 단백질 음료수로 때워. 밥이라고는 여기서 먹는 게 다야. 경로당에서 점심 안 줬으면 진즉에 요양원 갔을 거야. 고마운 일이지." 방기봉 할아버지(81)가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커피타임'이다. 할머니들이 방안에 빙 둘러앉아 종이컵과 커피믹스 한 봉지씩을 받아들자 이날 당번인 황정규 할머니(76)가 커피포트로 물을 부었다. 휘휘 저어 한 모금씩 마시면서 수다를 이어갔다. "커피를 마실 때도 다 정해진 자리가 있어. 여기서 제일 연장자인 89살 언니가 아랫목 차지야. 커피 다 마시면 뭐 하냐고? 10원짜리 고스톱 쳐. 치매 예방에 제일이야."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남성아파트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산업IT부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산업IT부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사진팀 강진형 기자 aymsdrea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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