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표기자
구글은 요즘 유독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픈AI를 비롯한 후발주자에 인공지능(AI)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빼앗긴 데다, 검색시장에서는 반독점 소송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미 법무부는 “구글이 온라인 검색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며, 구글의 웹브라우저 크롬(Chrome)의 강제 분할 매각을 법원에 요청한 상태입니다.
검색시장은 구글의 핵심 사업입니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세계 온라인 검색시장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검색 서비스를 통한 광고 수익은 전체 매출의 70%에 달합니다. 올해 1년간 벌어들인 광고 매출만 최소 2500억달러, 원화 약 348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구글 검색의 대부분이 바로 크롬을 통해 이뤄집니다. 2008년 구글이 내놓은 크롬은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약 67%의 세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크롬은 구글 검색엔진이 이용되는 핵심 통로이자, 구글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 기반인 셈입니다. 이 기반을 떼어냄으로써 구글의 검색시장 독점을 완화하겠다는 것이 미 당국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구글은 검색시장에서 이렇게 막강한 기반을 갖출 수 있었을까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분할해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절대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요. 답은 ‘피드백 구조’의 힘입니다.
인터넷이 막 확장하던 1990년대 후반, 검색엔진 시장은 알타비스타(AltaVista)와 야후(Yahoo!), 라이코스(Lycos) 등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1996년 1월,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자 친구였던 두 사람,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검색시장에 도전장을 냅니다. 구글의 탄생입니다.
구글은 검색창만 달랑 있는, 당시로선 파격적일 만큼 심플했던 첫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또한 광고없는 깨끗한 검색결과 등으로 사용자들의 신뢰를 얻었죠. 웹페이지의 중요도를 평가하는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으로 검색결과도 차별화했습니다. 견고하던 검색시장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고, 가파른 성장세에 올라타더니 결국 오늘에 이르게 됐죠.
그 가파른 성장 과정에서 구글은 강력한 ‘피드백 구조’를 완성합니다. 초기 사용자들에게서 호평을 얻고 → 더 많은 사용자가 생기고 → 더 많은 검색 데이터가 생기고 →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이 더 개선되고 → 검색 품질이 더 향상되고 → 사용자 만족도가 높아지고 → 더 많은 사용자가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검색엔진 사용자들의 검색어, 검색량, 클릭, 체류시간 등 행동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검색 의도 파악과 결과물 제공이 정확해졌죠. 이는 다시 사용자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09년 검색엔진 빙(Bing)을 출시했습니다. 구글을 따라잡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동원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아직까지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덕덕고(DuckDuckGo) 역시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검색시장에서 구글에 도전했지만, 빙과 덕덕고 모두 검색량은 물론이고 광고 수입도 구글에 비할 바가 안 되죠. 빙과 덕덕고의 추격이 그토록 힘든 이유가 바로 피드백 구조였던 겁니다.
후발주자들은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알고리즘 개선에 한계가 있었죠. 피드백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두주자의 이점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터가 쌓이는 양이 달라졌고, 이는 검색 품질 격차로 이어졌습니다.
경쟁자와의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진입장벽이 만들어집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더라도 극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선점자의 절대적 우위를 만들어주는 ‘피드백 구조의 힘’을 누리는 기업은 사실 구글만이 아닙니다. 아마존과 쿠팡 같은 유통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많은 소비자 → 많은 판매자 입점 → 더 다양한 상품과 경쟁적 가격 → 더 많은 구매자’라는 선순환을 만들었죠. 단기적인 적자를 보더라도 우선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최저가로 상품을 제공했습니다. 소비자가 몰려들었고, 판매자, 상품, 쇼핑데이터를 축적했죠.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콘텐츠와 이용자간 상호작용이 생겨났고, 이는 다시 신규 사용자 유입으로 이어졌습니다. 넷플릭스는 구독자가 늘면서 더 많은 콘텐츠 투자가 가능해졌고, 축적된 시청 데이터로 추천 알고리즘을 개선했습니다. 정확한 추천은 콘텐츠 시청량을 늘렸고, 이는 다시 투자로 이어질 수 있었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수많은 AI 스타트업들이 서둘러 서비스를 출시하고, 벤처 캐피털들이 거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겁니다.
AI 시장 역시 선점자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부여합니다. 더 빨리 시장에 배치될수록, 더 빨리 데이터를 모으고 더 빨리 학습을 시작할 수 있죠. 선점의 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구글이었기에, 큰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2022년 11월 오픈AI가 챗GPT3.5를 공개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챗GPT 쇼크’라는 말까지 나왔죠. 오픈AI, 챗GPT가 마치 AI의 대명사처럼 활용됐습니다. AI에 그 누구보다 많은 투자를 해왔고, 또 오래 해왔던 구글엔 달갑지 않은 일이었죠. 그래서 구글은 불과 3개월 만에 대항마로 바드(Bard)를 출시합니다.
2023년 2월 6일에 공식 발표하고 이틀 후 가진 시연회에서 바드의 능력이 공개됩니다. 바드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9살 어린이에게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JWST)이 발견한 것을 설명해줘"
바드는 이렇게 답합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태양계 밖의 행성을 처음 찍는 데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답이었습니다. 태양계 밖 행성을 처음 촬영한 것은 JWST가 아니었죠. 2004년 유럽남방천문대의 초거대 망원경 VLT(Very Large Telescope)입니다. 전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구글의 AI'가 망신을 당한 순간이었죠.
급해도 너무 급했다는 내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구글 내부 사이트에서 한 직원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를 겨냥해 "바드 출시는 성급했고 근시안적이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러면서 "제발 장기적인 전망으로 돌아가라"고 했죠.
내부 직원들은 이 글에 무수한 ‘좋아요’로 지지를 보냈습니다. 첫 시연 이후 구글 모회사(알파벳)의 주가는 이틀새 10% 급락했습니다. 오답 망신에 주가 폭락까지. 구글엔 잊을 수 없는 오답노트 기록의 날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