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환기자
미국이 금리인하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인 1450원을 뚫었다. 외환당국이 시장안정화 조치에 나섰지만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과 국내 정치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17.5원 오른 1453.0원에 개장했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막바지였던 2009년 3월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미국 Fed(연방준비제도)가 향후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밝히면서 우리 외환시장이 큰 영향을 받았다. Fed가 이날 새벽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서 공개한 점도표에 따르면 내년 금리인하폭은 0.5%포인트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 점도표에서 예상됐던 1%포인트 인하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인플레이션 전망이 다시 높아짐에 따라 금리 전망 중간값도 다소 높아졌다"며 "인플레이션이 더 강해지면 금리 인하 속도를 더 늦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이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연중 최고치인 108을 뛰어넘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새벽 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상당히 매파적으로 해석된다"며 "달러가 초강세를 보임에 따라 환율도 연고점을 경신했다"고 분석했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환당국은 연이어 시장안정 발언을 내놓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거시경제금융회의(F4 회의)를 열어 "24시간 금융·외환시장 점검체계를 지속 가동하면서 과도한 변동성에는 추가적인 시장 안정 조치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도 이날 오전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대외 불확실성이 국내 정치 상황과 결합하면서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신속하게 시장 안정화 조치를 실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전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국의 잇따른 발언에도 시장에서는 환율이 단기적으로 1500원을 뚫고 올라갈 수 있다고 봤다.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정국으로 국내 정치와 경제의 불안감 커진 상황에서 미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중국 위안화나 일본 엔화, 유럽 유로화 등 주요국 통화보다 우리 원화가치의 하락률이 더 큰 것도 이같은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미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 심화에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순매도세도 지속되고 있어 단기적으로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