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최태원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내렸던 비상계엄 선포가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계엄 선포 직후 계엄사령부가 내놓은 포고령에 전공의 복귀 명령과 위반 시 처벌 방침이 초강경 어조로 담기면서 의료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4일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 나온 포고령을 보면 현재 의료 사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난다"며 "우리의 원칙을 고수하며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전날 계엄사령부의 제1호 포고령 5항엔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돼 있다. 집회, 시위 등 정치적 활동을 금하고 언론과 출판의 통제를 명시한 전체 6개 항목 가운데 유일하게 의사, 그중에서도 전공의라는 특정 직역을 거론한 것 자체가 정부가 의사들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최안나 대한의사협회(의협) 대변인은 "처단이란 표현은 테러단체를 대상으로 할 때나 쓰는 것 아니냐"라며 "계엄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놀라운 사실은 계엄 포고문에 국민의 생명을 최일선에서 지켜온 의사들을 처단 대상으로 명시했다"며 "의사들이 반국가세력인가, 의사들이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는가, 전공의들을 끝까지 악마화할 것인가, 우리는 분노와 허탈을 넘어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개탄했다.
포고령에 지목된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을 놓고서도 과연 그 대상이 누구인지 의견이 엇갈렸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올해 2월 집단 사직한 전공의 대부분은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사직 처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의협은 현재 사직 전공의로서 파업 중인 인원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최 대변인은 "(포고령대로) 현장을 떠나 있는 의료인이면 장롱면허자나 해외에 휴가를 간 사람들까지 다 잡아넣겠단 말 아니냐"라며 "전공의들도 아무도 파업하고 있지 않은데 국민을 호도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의협 회장 보궐선거 후보자들도 계엄 포고령에 대해 일제히 반발했다. 이에 따라 내년 초 차기 의협 회장으로 누가 선출돼도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는 "대통령이 의료농단의 주범이고 정부 정책이 의료계에 대한 정치 탄압이란 것이 밝혀진 셈"이라며 "의료계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고, 현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당장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고 했다.
김택우 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회장은 "포고령을 보면서 '의료계를 반국가 세력처럼 취급하는 정부'라고 느꼈다. 정부의 인식이 굉장히 잘못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사직 전공의들에게도 '정부에 사태 해결의 의지가 없는 것이 맞았구나'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도 "포고령을 보면 의료 사태에 대한 정부 입장이 보인다"며 "반년 넘게 이해의 폭을 넓히려 노력해 봤는데 '처단' 표현을 쓰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반문했다.
사직 전공의들의 반감도 심화하고 있다. 경기도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A씨는 "이번 계엄 사태를 보니 오히려 대통령의 주장에 힘이 빠지면 의료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전공의 사이에선 탄핵정국이 벌어지면 정부의 의대증원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고, 우리 요구사항을 제대로 전달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다른 사직 전공의 B씨는 "정부가 전공의를 적으로 생각한다는 걸 포고령에서 확인했다. 전공의 복귀 강요로 그동안 전공의 없이도 의료현장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정부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라며 "전공의들의 요구사항을 전해야 할 때가 왔고, 어떤 걸 요구해야 할지 다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반민주적 행태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한 번 참담함을 느낀다"며 "독재는 그만 물러나세요"라고 썼다.
한편 의료사태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전날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나온 직후 "이행 지침과 대응 방안을 파악 중"이라고 밝힌 후 4일 오전까지 별도의 입장 발표나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