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연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반이민 노선을 택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실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앞세운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고숙련 이민자를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이로 인해 이민을 제한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강경론자들과 갈등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첫 임기 동안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행정부에 고숙련 이민자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당시 백악관 선임 보좌관이자 강경 이민 정책을 설계에 앞장선 스티븐 밀러에 의해 이 같은 시도는 좌절됐다. 밀러 전 보좌관은 2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에 내정됐다.
한 차례 좌절했던 기술 기업들은 이번엔 트럼프 당선인의 '퍼스트 버디(1호 친구)'이자 정부효율부(DOGE) 수장 머스크 CEO라는 강력한 우군을 확보했다. 머스크 CEO는 그간 "미국으로의 합법 이민은 매우 재능있는 사람들에게도 터무니없이 느리고 어렵다.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머스크 CEO 또한 이민자 출신이다. 또 벤처 투자가 마크 앤드리슨 등도 고숙련 이민자를 핵심 의제로 설정했다.
실리콘 밸리는 차기 행정부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능력 있는 이민자를 더 많이 유치하는 정책을 통과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얼핏 불법 이민에 강경 노선인 트럼프 행정부에 반대되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고숙련 이민자 유입이 미국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드는 방안으로 포장될 경우 더 많은 합법 이민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 로비 단체들은 미국의 장기적 전략 목표를 달성할 만큼 기술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다며 STEM 이민자 수를 늘리라고 오랫동안 촉구해왔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반도체지원법(CSA) 제정 당시 고숙련 이민자 확대 방안을 집어넣으려 했으나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나 폴리티코는 기술 억만장자들과 친밀하며 불법 이민에 강경한 트럼프 당선인하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불법 이민엔 강경하게 반대하지만 지난 6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 학생들에게 자동으로 그린카드(영주권)를 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기술업계 단체인 테크넷의 린다 무어 CEO는 트럼프 정권인수팀과 협력해 고숙련 이민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어 CEO는 머스크 CEO와 비벡 라마스와미가 이끄는 정부효율부를 통해 고숙련 이민 확대를 압박할 방침이다. 다른 STEM 이민 옹호자들도 해당 사안을 다뤄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공화당 고위 인사들도 고숙련 이민 문제에 긍정적이다.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은 최근 "우리에게는 취업 비자가 필요하다. 합법 이민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머스크 CEO와 기술 기업들의 반대편에선 밀러 전 보좌관을 비롯한 이민 강경론자들이 있다. 이들은 외국 STEM 근로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하이테크 산업의 임금을 떨어트린다고 경고한다.
반이민단체 넘버USA는 "미국 국민은 이민 정책 약화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댄 스타인 미국이민개혁연합 회장은 STEM 이민의 소폭 증가엔 반대하지 않지만 모든 변화는 훨씬 더 엄격한 이민법 집행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밀러를 비롯한 인사들이 고숙련 이민 대규모 증가에 반대하는 강력한 세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