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인플레이션 리스크에 취약한 한국의 연금 투자자들

원리금 보장형상품 비율이 87%
화폐가치 하락 대비책 거의 부재
글로벌 분산투자로 주식 늘려야

은퇴 시에 우리가 맞이해야 할 5가지 리스크가 있다. 장수 리스크, 인플레이션 리스크, 시장 리스크, 금리 리스크, 수익률 순서 리스크가 그것이다.

장수 리스크는 말 그대로 오래 사는 위험을 말한다. 미국 보스턴 대학 경제학과 로렌스 코틀리코프 교수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장수는 상상만 해도 좋은 일이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는 악몽”이라고 단언한다. 오래 사는 삶은 큰 비용을 수반한다.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화폐 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긴 노후 생활 동안 인플레이션율 이상의 이익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내야 한다. 만일 3%의 인플레이션율이 계속된다면 대략 20년마다 내 돈의 가치가 두 배로 떨어진다.

시장 리스크는 주식 시장의 폭락과 같은 상황을 말한다. 만일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주식 자산이 있는데 퇴직 시점에 2008년 금융 위기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상당한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금리 리스크는 금리 변화에 따른 위험을 말한다. 보유한 채권 가격이 금리 변화로 인해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낮은 금리로 인해 예금 수익률이 낮은 것을 뜻한다. 수익률 순서 리스크의 핵심은 은퇴 초기에 낮은 수익률을 거둘 경우 노후 생활 내내 힘겨운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여러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보면 퇴직 후 10년의 자산운용이 노후 생활의 전반을 결정한다. 퇴직 후 10년의 운용 계획과 전략이 중요하다.

아직 국내 투자자들은 5가지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이 미진한 편이다. 5가지 모두 부족한 상태지만 특히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한 고민이 전혀 부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금은 노후에 생활비로 쓸 용도이므로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한다. 역사적으로 채권이나 예금은 인플레이션을 헤지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모든 투자 교과서에 이 얘기가 나온다.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예금이나 채권만으로 소위 안전자산이라 불리는 투자 대상에만 투자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주식 자산을 기반으로 연금을 운용한다. 2023년 말 기준 우리나라 연금 투자자들의 원리금 보장형 상품 비율은 87%나 된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원리금 보장형 비중이 높은 편이다.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그것도 단 한해도 마이너스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가 있다면 금상첨화 중의 금상첨화일 것이다. 안정성과 수익성의 결합, 모든 이들이 꿈꾸는 투자 대상이다. 애석하게도 현실의 세계에서는 이런 것이 존재할 수 없다.

38년간 시장 폭락이나 급등 상황에서도 매년 10~12%의 수익률을 투자자들에게 안겨준 전설적인 펀드가 있었다. 바로 미국의 버나드 메이도프가 운용했던 펀드였다. 이 펀드에 투자했던 인물들의 리스트를 보면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 유명 인사가 즐비했고, 세계적 금융회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펀드는 결국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 폰지 사기로 판명이 났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안정성과 수익성의 완벽한 결합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예금은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취약하고, 고수익을 약속하는 투자처는 가격 하락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안정성만 추구해서도, 그렇다고 고수익만 추구해서도 소중한 연금을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 자신의 성향과 재무 상태에 맞게 적절한 자산 구성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연금 투자자들의 자산 구성은 글로벌 기준으로도, 장기적인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비정상적이다. 글로벌 분산 투자를 통해 주식 자산의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 연금은 장기적으로 자산이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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