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왜 '통일 삭제' 대신 '요새화'만 선언했나

'국경 요새화' 공사…남측과 단절하겠다는 北
'통일 폐기' 불분명…개헌하고도 공개 안했나
美 대선 앞두고 핵실험보단 다른 도발 가능성

북한이 남쪽 경계선을 영구 차단하는 '요새화'를 선언하며 군사적 도발을 예고했다. 본격적인 군사시설 건설에 전방 지역 봉쇄로 남북 단절 수위를 한 차원 더 높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당초 예상됐던 '통일 폐기' '영토 조항' 개헌 여부를 밝히지 않은 점을 두고서는 북한도 '통일'을 대체할 체제 이념을 마련하지 못한 딜레마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요새화' 선언…전방위적 분리 조치 의도는?

북한이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철도를 9일부터 완전히 끊고 '남쪽 국경'을 완전히 차단·봉쇄하는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선언했다. 사진은 9일 오두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10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명의 보도문을 통해 "이날부터 대한민국과 연결된 우리 측 지역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견고한 방어 축성물로 요새화하는 공사가 진행되게 된다"고 밝혔다. 북한이 밝힌 '남쪽 국경 요새화' 공사는 남북을 잇는 도로·철도 등을 끊고 비무장지대(DMZ) 내 방벽 설치 등 단절 조치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다.

북한은 이미 올해 초부터 이 같은 단절을 예고했다. 과거에 사용하지 않던 '국경선'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1월에는 육상 국경선, 2월에는 연평도·백령도 해상 국경선이란 표현을 썼다.

육상 국경선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경의선·동해선 철로에 지뢰를 매설하기 시작했다. 4월부턴 전방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장벽을 쌓아 올렸다. 6~7월에는 경의선·동해선 철로 제거 작업에도 나섰다. 현재 북한은 DMZ 내에서 불모지 평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놓고 248㎞에 달하는 군사분계선을 따라 북한이 '베를린 장벽'을 세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군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험준한 계곡 등 지형적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DMZ 내 지뢰를 추가 매설하거나 대전차 방벽, 군부대 투입을 위한 주둔지 설치 등은 가능하다.

일각에선 이런 봉쇄 조치가 북한군 귀순을 경계한 작업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 7월 대북 확성기 방송이 전면 재개된 뒤 북한군 1명이 강원 고성군 일원 동해선 인근 지역 휴전선을 걸어서 귀순한 바 있다. 즉 북한의 전방위적 분리 조치가 내부 단속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1호 지시 사항' 통일 삭제 개헌 여부 불분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김정은국방종합대학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울러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통일 폐기'와 국경선을 긋기 위한 '영토 조항' 등을 신설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아무런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개헌 여부 자체를 확인할 수 없다. 이는 '북한 1호' 지시 사항이었다. 헌법을 개정하고도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만큼 개헌 자체가 미뤄졌을 가능성이 생겼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개헌을 통해 영토조항을 신설하고 민족·통일 부정, 남북관계 적대화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역순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생겼다"며 "한미가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선(先) 단절 이후 단계적 현실화로 주민들에 대한 내부 설득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개헌 후 비공개'로 보는 시선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올해 1월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보면 아주 명백하게 '다음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시행하라'고 명령했는데, 북한 체제상 이건 수령의 교시"라고 짚었다. 그는 "통일은 북한 당국의 정체성이자 백두혈통의 기초인데, 이를 다 없앤다는 건 김정은 스스로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북한도 '통일'을 대체할 새로운 지도체제 이념을 제시하기 어려워 공개하지 못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북한이 개헌을 단행하고도 내용만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면 미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개 시점을 조절 중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금 북한에 시급한 건 핵 위협으로 미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 한반도 이슈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해상경계선 등은 국제법상 불리한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골적인 통미봉남…북한, 향후 도발 행보는?

이번 최고인민회의 결과 발표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요새화' 통지 과정에서 북한은 보다 노골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태도를 드러냈다. 남측과의 대화는 거절하고 차단하면서도, 미국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요새화 공사 사실을 유엔군사령부에만 통보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직통 전화기인 일명 '핑크폰'을 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사령관을 겸임하는 유엔사를 미군과 동일시해온 북한은 이번에도 '미군 측'이란 표현을 썼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의 통미봉남은 갈수록 노골적"이라며 지난해 12월 이후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추가 발사가 없다는 점을 주요 지표로 꼽았다. 그는 "전형적인 한미 갈라치기"라며 "올해 보여준 도발 행위도 모두 남측을 겨냥한 행동"이라고 했다.

많은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핵실험보다 ICBM·인공위성·미사일 발사 등 다양한 군사적 도발 수단을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실험은 중국의 반대와 미국의 독자제재 등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대선 결과를 기다린 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핵실험을 하지 않아도 북미 간 군축 협상 가능성이 커진다.

국가정보원도 지난달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ICBM·인공위성·미사일 발사 등 다양한 도발 수단이 있으므로, 미국 대선 전보다는 그 이후에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는 지난달 23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 "미 대선 전후로 북한이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분석이다.

정치부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정치부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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