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우산을 자신의 우산으로 착각해 가져간 60대를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한 검찰 처분이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됐다. 헌재는 절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데도 추가 수사 없이 절도의 고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한 검찰의 처분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지난달 29일 A 씨가 청구한 기소유예 처분 취소(2023헌마79)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A 씨의 청구를 인용했다. 헌재는 “청구인(A 씨)에 대해 한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A 씨는 2022년 8월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 피해자가 우산꽂이에 꽂아둔 시가 20만 원 상당의 검정색 장우산 1개를 꺼내 가져가 훔쳤다는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A 씨는 “피해자의 우산을 내 우산이라고 착각해 가져간 것”이라며 본인에게 절도의 고의가 없었는데도 절도의 고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청구인과 피해자의 우산은 모두 검정색 장우산으로 그 색상과 크기 등 모습이 유사하다”며 “청구인의 나이나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우산을 착각했다는 청구인의 주장이 비합리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A 씨의 나이가 62세였으며, A 씨가 이 사건이 있기 약 4년 전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면서 신경과 검사를 받은 점이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헌재는 또 “피해자의 우산은 청구인의 우산과 달리 손잡이에 비닐포장이 씌워져 있기는 했으나, 이는 사소한 부분이어서 충분히 착오할 수 있다”며 “피해자의 우산에는 고가의 외제차 브랜드 마크가 부착돼 있기는 했지만 폐쇄회로(CC)TV 영상만으로는 청구인이 피해자의 우산에서 마크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당시 A 씨는 일행 2명과 함께 주거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방문했고 우산을 찾을 때에는 이미 일행이 신용카드로 결제를 마친 상황이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A 씨가 우산을 절취했다고 보기에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A 씨가 피해자의 우산을 자신의 우산이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고, 수사기록만으로는 A 씨에게 절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검사는 추가 수사 없이 절도의 고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을 했는데 이 처분에는 중대한 수사 미진 또는 증거 판단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홍윤지 법률신문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