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돈기자
지난 5월19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무전취식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은 관악서 수사2팀은 곧장 현장에 출동해 음식을 먹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던 A씨(27)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같은 시기 무전취식 신고가 잦았던 탓에 A씨를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이어가던 경찰에게 A씨는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읊조렸다.
<i>“이렇게라도 감방에 가고 싶어요.”</i>
이상함을 감지한 경찰관이 A씨를 살펴보니 신체 곳곳에 멍이 들어 있었다. 경찰관의 설득 끝에 A씨가 어렵게 입을 열었고, 사연을 들은 경찰관들은 수사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A씨는 사건 이전에 한 가출팸을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 가출팸은 A씨를 비롯해 리더 B씨(27)와 또 다른 남성 C씨(26), 그리고 여성 D씨(25), E씨(24), F씨(24) 등 모두 6명이 함께 B씨의 집에서 생활했다. 덩치가 작고 왜소했던 A씨는 비교적 덩치가 큰 B씨와 C씨에게 기에 눌려 지냈고, 어려운 부탁도 거절하기 힘들었다.
이 가출팸은 5월 들어 서울 관악구 일대 식당을 돌며 무전취식을 일삼았고, A씨는 늘 식당에 마지막까지 남아 이른바 ‘독박’을 써야만 했다. 나머지 일행이 화장실을 간다거나 담배를 피우러 간다는 핑계로 식당을 떠나고 나면 뒷수습은 A씨의 몫이었다. A씨는 앞서 3차례나 무전취식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B씨와 C씨가 두려웠던 A씨는 여러 차례 경찰 조사에서도 “함께 밥을 먹은 일행들이 누군지 모른다. 연락처도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세 번째 경찰 조사에서 경찰의 추궁 끝에 B씨와 C씨의 이름과 주소를 자백했다. 경찰은 B씨와 C씨가 각각 사기와 예비군 불참 등으로 벌금 수배가 내려진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체포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끝까지 A씨를 협박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이에 경찰은 무전취식과 사기 혐의는 적용하지 못하고, 벌금 수배 형집행만 적용해 B씨와 C씨를 검찰에 인계했다. 검찰로 넘겨진 B씨와 C씨는 벌금을 납부하고 곧바로 풀려났다.
그렇게 다시 가출팸으로 돌아온 A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C씨의 폭행이었다. 관악구의 한 어린이공원에서 C씨는 1살 형인 A씨의 얼굴을 발로 차는 등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C씨는 “경찰에서 우리 이름과 주소를 얘기했냐”며 A씨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 A씨는 이같은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구속되기 위해 재차 무전취식 범행을 저지르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가출팸에서 탈출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경찰은 체포 3일 만인 5월21일 A씨를 구속하고, 같은 달 24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나머지 가출팸 인원 5명을 무전취식 및 사기 혐의로 추가 입건하고, 관악서에 접수됐던 무전취식 사건들을 병합해 수사를 이어나갔다. A씨를 폭행한 C씨에게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보복폭행)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경찰은 B씨와 C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6월3일 이들을 붙잡아 사흘 후 C씨를 구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C씨는 전과 4범, 리더인 B씨는 무려 전과 26범(보호처분 포함)인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B씨의 경우 강도와 절도, 사기, 아동복지법 위반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던 데다가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에도 매수 명의자로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B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신청했으나, 법원이 “혐의 소명이 다 됐고, 추가로 인멸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무전취식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일행을 겁박하고 폭행까지 일삼았던 극악무도한 이 가출팸은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구속을 바랐던 A씨 역시 무전취식에 가담한 혐의로 함께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