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기자
의대 증원에서 비롯된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한 가운데 정치권과 지자체에서 의대 신설 요구가 속출하고 있다. 기존 의대 2000명 증원에 이어 의대 신설까지 추진되면서 의정 갈등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22대 국회는 지난 5월 말 개원 직후부터 의대 신설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 인천, 충남 공주, 경북 안동·포항, 전남 목포·순천 등 6개 지자체와 국군의무사관학교 등 7개 의대 신설 추진 법안이 발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김원이·김문수·김교흥 의원이 각각 목포대, 순천대, 인천대에 의대를 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김형동·김정재·강승규 의원이 안동대, 포스텍(포항), 공주대에 의대를 신설하는 법안을 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졸업 후 의무 군 복무를 해야 하는 국군의무사관학교 신설 법안을 발의했다.
정치권은 이중 의대 신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을 전남으로 본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달 31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2026년 전남 국립의대 신설을 위한 정원 배정 요구에 "어떤 방식으로든 정원 배정을 반드시 할 것"이라며 "복지부는 전남 국립의대 신설에 100% 공감한다"고 답했다.
경북과 인천은 국회뿐 아니라 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의대 신설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6월 경북 경산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안동대에는 공공의대, 포스텍에는 연구중심 의대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찾아가 인천대 산하 공공의대 신설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정치권과 광역자치단체가 올봄 이후 동시에 의대 신설을 추진하고 나선 이유는 외견상으로는 지역· 공공의료 확충이다. 각 법안의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전문의료인력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낮은 활동 의사 수', '응급의료 및 필수 의료서비스 등 공공의료 기반 마련', '지역의료 강화' 등이 명시돼있다.
이에 따라, 의대 신설 법안 상당수는 신설 의대 졸업생은 해당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규정한다. 목포대, 공주대, 안동대 의대 신설 법안에는 일정 비율 이상의 신입생을 '지역공공의료과정' 등 전형으로 선발해 학비를 국비로 지원하는 대신 해당 전형 입학생은 의사 자격 취득 후 의대 소재 광역단체에서 일정기간 의무 복무해야 한다. 인천대, 목포대, 공주대 의대 졸업생은 각각 인천, 경북, 전남에서 10년간 의무복무 조건이다. 안동대 의대는 '일정 기간' 경북에서 복무하도록 규정돼 있다. 국군의무사관학교 출신은 15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해야 한다.
의료계는 이러한 의대 신설 방안에 반대한다. 채동영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지역·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의정갈등의 골을 더 깊어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의무 복무를 전제로 하는 공공의료 전형도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020년 의정갈등 당시 의료계는 '시민단체 추천 전형'을 전제로 한 정부의 공공의대 도입안에 대해 극도로 반발했으며, 정부는 결국 이 방안을 백지화했다. 2020년 의료파업 당시 대한전공의협의회 간부였던 현직 의사는 "공공의대 출신 의사의 지역 의무복무는 거주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지역·공공의대 신설 논의가 올해 다시 진행되면 의정갈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의대 신설시 필수적인 국내 의대 총정원 추가 증원이나 기존 의대 정원 재배분 문제도 거론한다. 올해 발의된 7개 의대 신설 법안 중 정원을 제시하지 않은 인천대 법안과 의무사관학교 법안을 제외한 5개 법안에는 각 의대 정원이 50~100명 내외로 명시돼 있다. 이를 합하면 5개교에서만 450명 수준의 정원이 늘어나게 된다. 채동영 의협 이사는 "(국회의원들이 국내 의대 전체의 적정한) 정원을 고려하지 않고 (각자 따로따로) 법안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의대가 신설되면 결국 정원 문제와 엮인다. 의협은 정부의 2000명 증원과 함께 묶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