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환기자
인파 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이태원 참사 후 사회재난 대응 시스템은 제대로 정비가 이뤄졌는가.
최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공연장에서 발생한 다중운집 인파사고 우려는 우리의 안전 의식이 크게 달라진 게 없음을 보여준다. 4층짜리 철제 조립식 건물에 4000여명이 몰렸다고 하니, 일부 관객들의 호흡곤란으로 공연이 중단된 게 되레 다행일지 모른다.
정부와 서울시, 자치구 등이 뒤늦게 점검에 나섰지만 지금으로선 주최업체가 사전에 제출한 재해 대처 계획서를 확인하는 게 전부다. 주최사가 적어 낸 관람 예상 인원과 실제 입장한 인원을 비교해 안전관리에 소홀했는지를 따져보고 정지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이번 상황이 종료될 것도 뻔하다. 여기에 공연 주최 측이 정원 이상으로 표를 판매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점을 감안하면 이태원 압사 사고를 잊은 듯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다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태원 참사' 후 정부가 축제·행사에서 인파사고를 방지하겠다며 대대적으로 내놓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도 사각지대는 여전했다. 성수동 공연장 사태는 '축제'가 아닌 '공연'으로 해당 대책 적용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고 '신고'만 하면 되는 별도의 공연법으로 관리돼 왔다. 사전 심의 규정이 없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면 신고 절차만 다시 들여다봤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셈이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불과 열흘 전 다중운집 인파사고가 사회재난으로 법령에 명시됐지만 이 역시 예방보단 사후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벌어진 정치권의 치열한 '책임' 공방 여파가 법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재난관리주관기관의 모호했던 부분만 잡아내는 데 집중한 탓이다.
정부 역시 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관계기관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추진됐다', '재난관리주관기관은 소관 유형의 재난이 발생하면 지체 없이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운영해 재난을 수습해야 한다'는 취지로 신속 대응을 약속하는 데 그쳤다.
우연찮게 성수동 공연장에서 멀지 않은 성수역에서도 다중운집 인파사고 우려가 수일째 이어졌다. 관내 지식산업센터가 늘고 이른바 '핫 플레이스'가 많아지며 성수역의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이 급격히 늘어난 결과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1970~80년대 수제화 공장이 밀집했던 당시의 교통체계가 그대로 이어진 점에 있다. 지역사회가 바뀌었지만 행정력이 따라가지 못해 성수역은 예전과 같이 단 4개의 출입구로만 이 인원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태원 참사 2년여가 지났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사회재난 대응 시스템은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시스템을 촘촘하게 구축하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을 확인해보면 현실은 더 참담하다. 정쟁 수단으로 활용되다 우여곡절 끝에 합의 처리한 '이태원 특별법'을 제외하면 이태원 참사 후 예방과 사후관리를 위한 관련 개정 법률안들은 대부분 지난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다중운집 인파사고는 예상 밖 범위에서 발생하는데, 국가 행정력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필요하다면 다양한 안전 수요를 감안해 최소한의 규제는 물론 과감한 행정 판단을 보장해 줄 관련법 논의부터 이뤄져야 한다. 땜질식 처방 대신 지금부터라도 인파 밀집에 대응하는 세밀한 안전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갈수록 헐거워질 시스템은 또 다른 성수동, 성수역 사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 사회부 배경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