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수기자
미국을 비롯해 해외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펀드 시장에서도 해외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증시가 해외 증시 대비 상대적으로 부진한 영향이 컸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공모펀드 순자산 총액은 지난해 말 348조2800억원에서 올 상반기 말 415조9000억원으로 19.4% 증가했다. 국내 투자펀드 순자산 총액은 265조4900억원에서 308조3500억원으로 늘었고 해외투자펀드는 82조7900억원에서 107조5500억원으로 늘었다. 국내 투자펀드 순자산 총액이 16.1% 늘어나는 동안 해외투자펀드는 29.9% 증가했다.
해외투자펀드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는 수익률 영향이 가장 크다. 올해 들어 6월까지 코스피는 5.4% 올랐고 코스닥 지수는 3.0% 하락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 지수는 22.1% 올랐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미국 기술주 강세가 이어지면서 나스닥 지수 상승 폭이 컸다. 인도 증시 대표 지수인 센섹스(SENSEX)는 11.0% 상승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운용 설정액 100억원 이상 공모펀드 가운데 해외주식형 성과가 우수했다. 국내 444개 해외주식형 펀드는 상반기에 평균 수익률 12.3%를 기록했다. 연초 이후 7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된 한국투자글로벌AI&반도체TOP10 UH(S-R)는 40%가 넘는 수익률을 달성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5월 말 기준 펀드 월간 수익률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글로벌 펀드는 연초 이후 9.81% 상승했다"며 "지난해 6월 이후 매월 자금이 유입되며 12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들어 북미 증시 강세와 함께 매월 유입 금액이 증가해 연초 이후 같은 기간 설정액 증가 폭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6월에는 해외주식 펀드 월간 순유입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섰다"며 "주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미국 테크, S&P500, 인공지능(AI) 등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 상반기에 8조원 넘게 해외주식 펀드로 순유입된 반면 국내 주식 펀드는 상반기 753억원 순유입에 그쳤다"고 말했다.
최근 투자자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인도 펀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월간 기준으로는 지난해 9월부터 지난 5월까지 9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4550억원가량 증가했다.
국내 투자펀드 중에선 공모주 펀드가 의미 있는 성장을 보였다. 공모주 펀드 설정액은 연초 이후 1조3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으로 시중 자금이 몰린 영향을 받았다. 공모주 펀드는 기관투자가 자격으로 공모주 청약에 참여해 수익을 올리는 펀드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과 함께 배당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배당주 펀드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다만 이 같은 상황에도 국내 투자펀드보다 해외투자펀드 성장이 계속 두드러질 것이란 게 자산운용업계 시각이다.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개인 투자자가 늘고 있는 데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이 자금 이탈 방아쇠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개인이 보유한 미국 주식 금액은 900억달러(124조5600억원)를 넘어섰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인도 주식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해외투자펀드 출시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상원 한국투자신탁운용 상품전략본부장은 "해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성장주에 대한 상품 라인업을 확대해 수익률이 높다"며 "앞으로 매크로 변화 및 산업 트렌드에 맞춰 선도적인 상품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면 해외 주식시장으로 국내 자금이 몰려드는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본격적으로 시행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 3일 정부는 상반기 밸류업 지수 간담회의 후속 발표로 ‘역동경제 로드맵’을 공개했다"며 "다만 이는 세법 개정 사안으로 입법부 의결이 필요한 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사안을 포함하고 있어 의결을 낙관하기는 어렵다"고 우려했다.
금투세 시행 여부도 올 하반기 주목할 사안이다. 정부와 여당이 금투세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외주식 투자와 세제 형평성을 맞추게 된다면 미국과 한국 주식 시장 장기 기대수익률 간 격차를 고려했을 때 개인투자자의 중장기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