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은기자
밀양 여중생 성폭행 이슈의 전선을 단순화해보자.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44명의 ‘악인’이 있다. 13세 여중생을 가둬놓고 집단강간을 저질렀다. 모두 솜방망이 처분을 받았다. 20년이 지났다. 유튜버들이 ‘정의의 사도’처럼 등판했다. 가해자들의 신상을 한 명 한 명씩 공개했다. 구독자들은 정보를 퍼 나르고, SNS 계정에 욕설을 썼다. 학교나 회사에 징계·처벌·해고를 요구했다. 가족까지 탈탈 털어 온라인 공간에 사진과 이름을 박제했다.
언뜻 보기에 ‘절대 악’에 대한 사이다 보복의 서사로 읽힌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지만 청량감 있고 호소력도 있다. 형사·사법 시스템은 흉악 범죄를 단죄하지 못했다. 유튜버들이 자경단처럼 죄를 대리심판 했다.
하지만 사안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응징의 공간은 유튜브다. 조회 수·좋아요·슈퍼챗· 광고·후원금이 몽땅 돈이 되는 주목 경제가 지배하는 곳이다. ‘유튜브는 금광’이라는 말이 있다. 이곳에서 관심은 희소해서 환금성이 높다. ‘어그로’가 곧 자본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 값이 충격적일수록 이윤은 불어난다. 한 유튜버는 구독자가 9배 늘었다. 피해자의 음성 통화 내용, 판결문까지 공개했다. 피해자 동의는 없었다. 엉뚱한 사람을 지목하기도 했다. 피해자가 ‘신상 털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후에도 업로드는 이어지고 있다. 복제와 전송을 통해 무한하게 확산하기도 한다. 피해자의 잊힐 권리, 일상 회복의 가치는 무시된다. 유튜버는 담론장의 아이돌로 등극하고, 팬덤까지 형성된다. 그렇다면 신상 털기 행위는 그 자체로 비즈니스, ‘경제활동’이 아니면 무엇인가.
신상 털기는 디지털 자경주의(digital vigilantism)에 근거한다. 주로 공권력이 분쟁해결자, 공정한 심판관으로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할 때 득세한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민병대, 중국의 인육 검색엔진 등이 그 예다.
문제는 그 폐해다. 검증도 숙고도 없이, 출처도 신뢰성도 담보되지 않는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확산한다. 무고·오판·인권 침해·연좌제의 부작용도 발생시킨다. 밀양 신상 털기 유튜버들에게 접수된 신고만 고소 3건, 진정 13건 등 총 16건이다. 온갖 신상 털기가 자행됐지만 올 초 무혐의 처분을 받은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 친구의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
유튜버들은 선·악구도를 좋아한다. 선명하고 또렷한 전선을 만든다. 가해자만 처벌하면 속 시원하게 해소되는 문제로 구조를 편집한다. 이 문법은 간명해서, 대중의 분노와 격동하는 감정을 정밀타격한다. 화염처럼 불붙은 관심은 폭발적인 조회 수로 이어지고, 수익 창출로 귀결된다. 구조적 문제를 의인화해 돈벌이에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유튜브 콘텐츠를 위해 피해자가 희생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이슈의 은폐된 환부를 짚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