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북한인권보고서, '中 강제북송 경로'까지 담는다

尹정부, 이달 말 두번째 北인권보고서 발간
북송 경로부터 가혹 행위, 처벌수위까지 조사
'정보통제' 심화 따른 공개 처형 사례도 수집
정부 "원칙 있는 대북정책…북한 변화 유인"

통일부가 이달 말 공개할 것으로 알려진 '2024 북한인권보고서'에 중국이 탈북민을 강제 송환해온 경로와 그 과정에서 자행되는 인권침해, 북송 이후 처벌 수위까지 구체적인 조사 내용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물론, 이 같은 인권침해 범죄에 동조해온 중국을 상대로도 우리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북송 경로부터 처벌까지 보고서에 담아

중국 베이징의 한국 영사관 밖에서 중국 공안에 끌려가는 여성의 모습.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7일 정부 소식통은 "올해 북한인권보고서는 강제북송 실태를 관심 있게 다룬다"며 "탈북민이 중국에서 체포된 뒤 북한으로 이송되는 과정, 지역별로 어느 변방대를 거쳐 북송되는지 경로까지 담길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3월 북한인권보고서를 최초로 공개 발간했다. 올해가 두 번째다. 이번에는 ▲강제북송 사태 ▲북한 당국의 정보 통제 ▲해외 파견 노동자 착취 ▲코로나19 시기 통제 심화 등 4가지 주제를 '주요 사안'으로 다루며, 이를 별도 파트로 묶어 선순위에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보고서는 '시민적 권리' 등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데 그쳤지만, 이번에는 주제와 구성부터 달라졌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 600명에 달하는 탈북민을 대거 북송했다. 올해 들어서도 수십~수백명 단위 북송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끊기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난민 협약' 등 국제 규범에 따라 탈북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경제적 목적(돈을 벌기 위해)에 따라 국경을 넘은 비법월경자(불법체류자)로 간주한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정부는 다수의 진술을 바탕으로 북송 경로를 파악했다. 공안에 붙잡힌 탈북민이 거점별 변방대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송환되는지 시각화 자료도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단둥 변방대'에선 '신의주 보위부'를 거쳐 '평안북도 집결소'로 보내지는 수순이다. 그간 비정부기구(NGO) 등을 통해 '전언' 형태로만 인용되던 내용이다. 정부가 직접 조사해 보고서로 펴낸다는 건 '공신력' 차원에서 의미가 다르다. 공안의 체포가 북송의 시발점인 만큼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책임을 따지는 근거로도 쓰일 수 있다.

비정부기구(NGO) 수집·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23년 10월 중국이 탈북민 500~600명을 대거 북송할 당시 경로를 재구성.

강제북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문 등 '인권침해'에도 주목했다. 정부는 (보위원이) 자백을 강요하며 폭행하거나, 구금 중 숱한 성폭행이 벌어진다는 진술을 수집했다. 보고서에선 특히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보위원에 의한 성폭력, 체강수색(자궁검사), 강제낙태, 영유아 살해 등 피해 사례가 구체적인 진술과 함께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송 이후 어떤 죄명으로, 어느 정도의 형벌을 받게 되는지도 조사됐다. 그간 탈북은 '조국반역죄' 또는 '국경비법출입죄'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기별로 적용 혐의와 처벌 수위가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보고서에 담길 예정이다. 지난해 보고서에선 '행정처벌법에 따라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 정도의 언급이었다면, 이번에는 북송 시 적용되는 형량까지 다뤄진다.

이 밖에도 '정보 통제'를 다루는 파트에선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주민들을 공개 처형한 '최신 사례'까지 수집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2020년 12월 해당 법을 채택한 뒤 남측 영상물을 유포한 주민을 사형에 처하는 근거로 악용하고 있다. 북한이 정보 통제를 위해 주민을 처형했다는 진술이 보고서에 수록된다면 이 또한 정부가 밝히는 사례로는 처음이다.

지난해 첫 보고서에선 가장 말미에 배치됐던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사안은 이번에는 전진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 대책팀'을 만드는 등 그간 정부 차원에서 해결 의지를 드러내온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발전한 조사·기록…다음 과제는 국제사회 활용

북한인권보고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해 이 정도의 진술을 수집·조사하고 공식적인 보고서로 펴내는 건 전에 없던 일이다. 그간 정부 혹은 산하 연구기관들이 낸 북한 인권 분야 보고서는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치중한다는 한계 내지는 일종의 금기(禁忌)가 있었다. 그 틀을 깨고 중국에서의 북송, 러시아 등 해외 각지로 보내진 파견 노동자가 당하는 착취 실태까지 다뤘다.

향후 국제사회가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의 인권침해 범죄를 규탄할 수 있을지도 기대된다. 북한 인권 분야에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발표한 보고서가 가장 공신력 있는 자료로 여겨진다. 10년간 유의미한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가 이번 보고서를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알릴지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 관계자는 "재중 탈북민 문제를 따로 다룰지를 놓고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강제북송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조사 결과를 담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고 북한의 변화를 유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보고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바로 이곳에서 불과 50㎞ 남짓 떨어진 곳에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박탈당하고 굶주림 속에 살아가는 동포들이 있다"며 "북한 동포들의 자유와 인권을 되찾는 일, 더 나아가 자유롭고 부강한 통일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일도 결국 우리가 더 강해져야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부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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