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학교 교수는 최근 일본 증시 활황의 배경과 관련해 "일본 기업들은 위기를 겪으며 '살아남기 위해' 시장경쟁력 강화에 나섰고, 이를 위해 영업이익률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하기 시작했다"면서 "연구개발(R&D) 강화와 이에 따른 기업의 새로운 도전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에서 아시아경제 주최로 열린 2024 아시아금융포럼에서 '현장에서 본 일본경제' 세션 발표를 통해 "정부의 증시부양책, 중앙은행의 지속적 양적완화, 중국발(發)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등도 하나의 배경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 주가는 오를 수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선 최근 일본 경제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목표치인 2%를 지속 달성하면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탈피하는 흐름을 보인다고 전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22~2023년의 물가 상승률은 각기 2.3%, 3.1%로 2년 연속 목표치를 넘어섰다. 일본은행(BOJ)도 올해는 물가상승률이 2.8%, 2025~2016년은 1.9%로 2%에 근접하는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박 교수는 이어 최근 주가 상승의 배경으론 일본 기업들의 체질 변화와 혁신을 꼽았다. 도시바·산요·샤프 등 20세기 일본 산업을 주도한 기업들이 줄줄이 상장폐지·매각되는 등 위기의 시대를 겪고 난 이후로 살아남은 기업들이 영업이익률 제고, 즉 미래 생존을 위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일본 전자기업인 소니(SONY)의 경우 히라이 가시오(平井一夫) 전 대표가 등판하면서 '흑자 구조조정'과' 내실'이란 목표를 내걸었고 실제로도 영업이익률 제고에 성공했다"면서 "실제로도 일본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추세고, 투자자도 점점 영업이익률을 중시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아지노모토(식품)·세븐앤아이홀딩스(유통)의 엇갈린 주가 향방도 이런 흐름을 따르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양사 모두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률이 오른 아지노모토는 큰 폭의 주가 상승을 기록했지만, 그렇지 못한 세븐앤아이홀딩스는 주가가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지노모토는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었고 반도체 소재 시장에도 진출해 일부 품목의 경우 세계 시장점유율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사업이 다각화된 반면, 유통 집중한 세븐앤아이홀딩스는 일본 사회 고령화 추세를 겪으며 투자자조차 기업의 미래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우리 정부도 기업에 리쇼어링(Reshoring)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해외 진출을 독려해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기업의 R&D 강화와 신사업 진출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국가별 매출액 대비 R&D 비중을 보면 한국은 3.7%, 일본은 4.0%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한국의 경우 정부·삼성그룹을 제외하면 그 비중이 2.4%에 머무를 정도로 착시효과가 크다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이다.
박 교수는 "일본 기업을 보면 앞선 아지노모토(반도체) 사례는 물론 소니는 모빌리티·인공위성, 혼다는 경량 제트비행기, 도요타는 월면차 등에 도전하는 등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이라며 "또 인공지능(AI) 등 뒤처진 영역은 과감히 해외기술을 도입하는 대신, 소니-마이크로소프트, 소니-혼다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합종연횡에도 적극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박 교수는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디플레이션을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선 날로 늘어나는 국가부채, 정체된 일본 근로자의 실질임금 등이 해결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현재 일본은 정부부채를 갚는 데만 재정의 8.6%인 9조7000억엔(약 85조원)을 투입하고 있는데, 그러기엔 조세수입만으로 부족하니 (예산의) 31.5%를 새로운 채권발행을 조달한다"면서 "지난 10여년간 제2차 양적완화를 진행하며 (BOJ가) 10년물 국채금리를 거의 0%에 가깝게 유지해 왔으나 현재는 0.8% 수준까지 올라온 상황인데, 그럴수록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고 짚었다.
또 박 교수는 실질임금 상승도 관건으로 봤다. 일본 정부의 임금인상 요구로 명목임금은 상승 중이나 실질임금은 마이너스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2.5%로 2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박 교수는 "대기업은 게이단렌(??連) 등을 중심으로 올해 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5.8%의 임금인상을 염두에 둘 정도로 엔화 절하의 득을 보고 있으나,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손해를 보거나 최소 득을 보지 못하는 상태"라며 "결국 (일본)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일정 수준의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한 데, 이와 관련해선 다소 부정적인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