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인이 'K-빵 역수출'에도 웃지 않는 이유

SPC 파리바게뜨 이탈리아 진출
K-베이커리 경사 소식에 여론은 '싸늘'
허영인 회장 등 평판 리스크 SPC 미래의 짐

SPC 파리바게뜨가 연 30조원 규모의 유럽 최대 제빵 시장 이탈리아에 진출한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지난 24일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파스쿠찌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었다. 20년 전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들여온 SPC가 이제 '서양의 역사'인 빵을 역수출하게 된 셈이다. 빵의 본고장에서 한국식 레시피로 만든 빵이 판매된다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은 해외 인정 욕구가 강하다. '방탄소년단(BTS) 뮤직비디오 본 외국인 반응' '미국인의 냉동김밥 챌린지' 같은 소위 '국뽕'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학자는 이를 두고 '오랫동안 위축됐던 자존감이 점점 회복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리바게뜨 역수출에는 여론이 시큰둥하다. 오히려 부정적 댓글이 달렸다. '노동자 사망 사고를 기억한다'든지 '빵값 상승의 주범'이라든지. '내수차별이 심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기쁜 일에도 소비자는 왜 화를 낼까. SPC 관계자는 '낙인효과'라고 했다. 과거 잘못으로 미움받는 기업이 됐기 때문에 작은 실수가 크게 비치고, 성과도 깎아내려지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5일 검찰은 허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 제빵기사들에 노조 탈퇴를 강요했다는 혐의다. 허 회장은 황재복 대표를 통해 수사관에게 뇌물을 줘 정보를 빼돌렸다는 의혹도 받는다. SPC가 미움받는 이유는 낙인효과를 넘어 현재의 각종 의혹과도 연결됐다고 볼 수 있다.

1945년 황해도 옹진의 작은 빵집으로 출발한 SPC는 국내 최대 제빵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각종 논란으로 불매 운동이 벌어지며 기업 이미지는 조금씩 균열이 커지고 있다. 파리바게뜨에 몸담았던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제 쿠팡이 케이크까지 배송하는 시대"라며 "이대로 가다간 5년 내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소비자 마음속 미움을 털어내려면 SPC는 노동자에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주고, 보다 너그러운 기업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오너가의 부도덕함에 대한 의심이 없게 해야 한다.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중심으로 조금 비싸더라도 착한 기업의 제품을 사려는 '가치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평판 리스크는 미래의 SPC에 버거운 짐이 될 것이다.

유통경제부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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