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기자
유럽연합(EU)이 이집트에 3년간 74억유로(약 10조7000억원)를 지원하는 원조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집트의 경제난과 주변국의 분쟁으로 인해 유럽으로 유입되는 이주민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카이로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및 이탈리아·그리스·키프로스 정상으로 구성된 EU 대표단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전략적이고 포괄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안보, 재생에너지, 무역 등 분야에서 EU와 이집트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해당 원조 패키지에는 이집트에 향후 3년간 74억유로 상당의 보조금과 대출을 지원하는 안도 포함됐다. 지원금은 양허성 차관 50억유로(약 7조3000억원)와 투자 18억유로(약 2조6000억원), 보조금 6억유로(약 8700억원) 등으로 구성됐으며, 특히 보조금에는 이주민 문제 대응을 위한 2억유로(3000억원)가 포함됐다.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오늘 (유럽 정상들의) 방문은 이집트와 유럽연합의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이번 협상을 통해 파트너십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역사적인 협정"이라며 "이 계획은 지중해 양측 간의 새로운 구조적 협력 방법을 강화하고 장려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EU의 대규모 경제 원조는 이집트가 겪고 있는 경제난과 유럽으로의 이민자 폭증을 고려한 대처로 분석된다. 최근 이집트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 이집트는 앞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를 통해 구제금융 규모를 기존 30억달러(약 4조원)에서 80억달러(약 11조7000억원)로 늘리기도 했다.
전쟁 난민 문제도 심각하다.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인해 라파로 향한 피난민 규모는 100만명을 상회한다. 또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 공세로 수십만 명의 난민이 이집트 시나이반도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집트에는 유엔 난민기구에 등록된 난민과 망명 신청자 약 48만명을 포함해 900만명의 이주민이 유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상당수는 지중해를 건너 불법으로 유럽행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EU는 튀니지, 모리타니와도 지중해를 통한 이주민 유입 방지를 위해 자금을 지원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일각에서는 아프리카 국가에 이주민 억제의 대가로 돈을 주는 것이 이주민 탄압과 인권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제앰네스티 유럽 책임자인 이브 게디는 "EU 지도부는 이집트 당국이 명확한 인권 기준을 확실히 채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