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사이는 좋은 편?'…학생 멍드는 '가정환경조사' 여전

일부 학교 과도한 정보 수집 여전
학교 측 "필수 교육 자료일 뿐"

경기 화성시에 사는 최모씨(46)는 최근 중학생 자녀가 가져온 가정환경조사서를 받고 당황했다. 학생 지도를 위해 가정환경에 관해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올해 바뀐 질문이 유독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설문 내용엔 '경제 형편' '부모님 동거 여부' '부모님 간의 관계' 등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문항도 포함돼 있었다.

최씨는 "요즘엔 한부모 가정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모님의 동거 여부나 관계 등을 묻는 건 아이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는 질문이 아닌가"라며 "이런 질문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고 꼭 필요한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김다희

교육부가 학생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의 가정환경조사를 지양해 달라며 각 교육청을 상대로 권고에 나선 지 수년이 지났지만 일부 학교에서 여전히 유사한 내용의 조사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는 과도한 사생활 침해라며 문제를 제기하지만 해당 학교와 교사 측은 학생 파악과 지도를 위해 가정환경조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가정환경조사는 통상 새 학기가 시작되는 3~4월께 담당 교사가 학생들의 특성 및 가정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하는 설문 조사다. 1970년대부터 오랜 관행처럼 이어졌으나 2000년대 들어 학부모의 재산과 직업, 학력 등을 기재하도록 한 일부 문항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불필요한 선입견을 조장한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에 교육부는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과도한 정보를 수집하는 내용의 가정환경조사를 지양해 달라며 각 교육청에 권고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조사를 하는 실정이다. 현재는 '가정환경조사'라는 이름 대신 '학생상담 기초자료'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경제 형편이나 부모의 동거 여부 등을 묻는 문항이 있어 학생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오산시에 사는 김모씨(44)는 "얼마 전 아이가 학생 상담 자료를 받아왔는데, 가족 구성원 가운데 관계가 불편한 사람을 특정해 적으라고 하더라"며 "이 외에도 부모와의 친밀감 정도를 표시하라고 하는 등 세세한 정보를 요구해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한 중학교에서 신입생들이 앉아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학교 측은 이러한 가정환경조사가 다른 용도와 무관하며 오직 학생 지도를 위한 교육 자료로 이용된다는 입장이다. 경기지역 한 중학교 관계자는 "가정환경조사는 어떤 학생이 잘 사는 가정이고, 못 사는 가정이냐를 구분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올바른 지도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의 관계나 가정환경 등에 대한 숙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행하는 것"이라며 "또한 사전에 정보 제공 동의를 받기 때문에 작성을 원하지 않는 가정은 빈칸으로 남겨둬 작성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가정환경조사가 '학생인권조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는 각각 제14조와 제13조를 통해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모든 학생은 가족, 교우관계, 성적, 징계 기록 등에 대해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따로 처벌 규정이 없는 탓에 유인성은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굳이 담당 교사가 민감한 질문을 통해 설문 조사를 시행하지 않더라도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해당하는 학생은 구청에서 학교에 정보를 보내준다"며 "학생 본인이 원치 않음에도 담당 교사는 물론 다른 학급의 교사에게까지 가정환경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알려질 수 있어 학생 인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은 개별 학교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가정환경조사를 일일이 관리·감독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교육청 관계자는 "가정환경조사는 따로 정해진 서식이나 양식이 없고, 개별 학교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다 보니 얼마나 많은 학교가 어떤 문항을 통해 조사하는지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며 "교육청을 통해 학부모 민원이 들어올 경우 이를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사회부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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