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기자
금융당국이 이달 말 발표하기로 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배당할 금액을 먼저 확정한 뒤 배당기준일을 지정하는 내용의 배당제도를 준수한 기업을 참고 지표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부는 주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경우 배당기준일이 배당액이 확정되는 주주총회 전이어서 국내 주식이 저평가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지난해 배당 절차 개선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주주총회에서 관련 제도의 정착 여부가 이슈가 될 전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이달 말에 공개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 실행 방안에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선(先) 배당액·후(後) 배당일 제도와 관련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유력시된다. 그동안 국내 상장사 대부분은 연말에 배당받을 주주를 먼저 확정하고, 다음해 3월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확정했다. 그 결과 투자자는 배당금을 얼마 받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투자하고, 몇 달 뒤 이뤄지는 배당 결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상황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 같은 '깜깜이 배당'은 한국 주식이 저평가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배당기준일보다 배당금을 먼저 발표하고 배당기준일 역시 연말이나 분기 말이 아닌 특정일을 지정할 수 있다. 배당금 지급일자 역시 배당기준일과 시차를 최소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상 연말에 배당기준일이 정해져 실제 배당금 지급까지 4개월이 소요된다.
이에 정부는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배당 규모가 확정되는 것을 확인한 뒤 배당기준일을 정하도록 배당절차를 개선했다. 정부 권고대로 배당기준일과 의결권 기준일을 분리할 수 있도록 정관 변경을 마친 상장사들은 연말이 아니라 배당액 확정 이후로 배당기준일을 정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러한 배당 제도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행 방안 중 하나로 포함한 것은 배당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도입 취지와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유력한 실행 방안으로 검토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선 배당액·후 배당일 제도 역시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제도 안착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또 주주가치 제고 우수업체 등으로 구성된 벤치마크 지수를 개발할 때 새 배당제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기업을 참고지표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 발표 당시 금융감독원은 "자발적으로 정관 정비를 통해 배당절차를 개선한 상장사에 공시우수법인 선정 시 인센티브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혀 이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배당 정책을 운영해 기관과 외국인 등 투자자들이 배당 여부를 보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며 "배당절차 개선에 따라 연말 시장 변동성이 줄어들고, 대외적으로 상장사들이 배당할 의향이 있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자본시장의 화두로 배당이 떠오르면서 관련 제도 안착 여부가 올해 주주총회의 이슈가 될 전망이다. 아주기업경영연구소는 '2024 정기 주주총회 프리뷰'를 통해 "한국 증시의 저평가 원인 중 하나로 주목받아 온 배당 절차 개선에 대한 정관 변경 안건이 다수 상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등 기업 가치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정부 분위기에 편승해 아직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들도 동참에 나설지 주목된다. 지난해 말 기준 12월 결산 상장사 2267개사 중 636개사가 정관 정비를 통한 배당절차 개선 준비를 마쳤다. 이미 현대차, SK, 포스코, CJ 등 대기업은 배당절차를 손봤다.
한편 이달 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정부가 마련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상장사들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목표치 제시 등 기업 가치 제고 계획 공표를 권고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금융위윈회 요청으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초안을 마련 중인 한국거래소는 이달 마지막 주에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초안을 공유하고 의견을 청취하는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