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길기자
"슈퍼사이클이 돌아왔다"
조선업계에 최근 수년간 수주 행진이 계속되면서 초호황기를 뜻하는 슈퍼사이클이 찾아왔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업황 지표들은 조선업 역대 최대 호황기였던 2008년에 근접했으며, 내년 이후에도 긍정적인 흐름을 예상하는 전망이 잇따른다. 침체 일로를 걷던 조선업황이 되살아난 모습은 연일 상승하고 있는 신조선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는 지난달 27일 기준 176.03을 기록했다. 9월 말 175.38보다 0.65포인트 오르면서, 1월 27일 이후 39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신조선가 지수는 조선업종의 대표적인 선행지표로, 1988년 1월 세계 선박 건조 가격을 100으로 놓고 매달 가격을 지수화한 것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선박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신조선가 지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상승해 2008년 9월 191.58까지 치솟았다. 이전 '슈퍼사이클'의 정점이 바로 2008년 9월이다. 2000년대 초반 불황에 시달리던 조선업체들은 2008년 무렵 초호황을 누렸다. 최근 신조선가 지수가 저점을 기록한 시기는 2020년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지구촌을 휩쓸었던 2020년 12월 125.43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반등은 코로나 이후 갑자기 찾아왔다. 2021년에 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으로 인해 컨테이너선 중심으로 대량 발주가 시작됐고,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 불안 때문에 LNG(액화천연가스)선의 발주가 대규모로 이어졌다.
올해에는 카타르 2차 LNG선 발주에 이어 선박의 탄소배출 규제에 따른 친환경 선박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9월 말까지 LNG선 발주는 43척(국내 조선사 32척)에 그쳤지만, 40척 이상으로 추정되는 카타르 2차 발주 물량을 포함하면 90척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카타르에너지와 LNG선 17척의 건조 계약에 대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으며,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도 조만간 수주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역시 올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안유동 교보증권 선임연구원은 "예정된 LNG선 프로젝트를 고려하면 내년에도 LNG선 발주는 견고하다"면서 "2027년부터 2034년까지 연평균 90척 발주가 예상되는데 국내 조선사는 이 중 70척 내외를 꾸준히 수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조선 3사의 수주잔고는 이미 넘치고 있어,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선별적인 수주 전략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선박 중심으로 수주가 이뤄지고 있는데 해양플랜트 부문까지 살아나면 확실한 슈퍼사이클이 될 것"이라며 "고유가가 길어지면서 해양플랜트 발주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피를 말리는 구조조정의 파고를 넘었다. 이 위기를 넘지 못한 조선사들은 사라졌다. 현재 가동 중인 세계 조선소 숫자는 365개다. 2008년 1028개에서 3분의 1토막이 났다. 이 가운데 선박을 인도해본 경험이 있는 조선사는 고작 278개에 불과하다. 살아남은 소수의 조선사가 향후 선박 발주를 나눠서 수주할 것으로 기대된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승리인 최악의 시기가 끝났다. 이제 승리의 과실을 수확할 때다.
빠르게 국내 조선사들을 쫓고 있는 중국 업체의 추격은 여전히 매섭다. 중국의 올해 수주량은 1799만CGT(표준선 환산t수 726척)로 세계 수주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친환경 선박 기술 연구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조선소 인력 확보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정부의 지원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늘렸지만, 1만명 이상 인력 부족이 우려된다. 인력 확보를 위한 임금 상승도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부담이다.
조선업계에 큰 장이 섰다. 더 고무적인 것은 슈퍼 사이클에 이제 막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향후 몇년간 호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슈퍼 사이클이 끝나면 다시 고난의 사이클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업계가 호황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국내 조선업이 쌓아왔던 잘못된 관행 중 하나가 인력 활용"이라며 "사내 하청구조 속에서 하청 노동자는 평균적으로 정규직의 임금 60%를 받는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됐고, 작업 환경도 어렵고 위험해 노동자들이 떠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산을 정상화하고 숙련 인력과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조선산업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