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학생, 밥 나왔어!"
지난 22일 오후 1시, 컵밥 가게 23곳이 줄지어 있는 서울 노량진 컵밥 거리엔 공무원시험 수험생들이 띄엄띄엄 서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각자 귀에 이어폰, 헤드셋을 쓰고 잡음을 차단한 채 컵밥을 받자마자 비벼서 입에 욱여넣었다. 학생들은 후다닥 밥을 먹고 난 후, 커피를 사 들고 학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모든 컵밥 가게가 북적이는 건 아니었다. 23곳 중 8곳엔 손님이 없어서 한산했다. 밥에 얹을 고기를 프라이팬에 볶으며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컵밥 가게 주인도 있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인파로 꽉 차던 컵밥 거리였지만 이날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는 몇몇 수험생 이외 거리를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 22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서울 노량진 컵밥 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하늘 높은 줄 모르던 공무원 시험 인기가 식으면서 수험생이 감소한 노량진 공무원시험 학원가는 추석을 앞두고 더욱 한산했다.
보통 9월은 노량진 학원가의 비수기이다.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은 4월, 경찰공무원 공채는 3월과 8월에 시행되는 등 공채가 상반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석 연휴는 수험생들이 한숨 돌리고 쉬는 시기이다. 하지만 노량진 학원가 상인들은 "올 추석만큼 거리가 빈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뒷받침하는 통계는 계속 낮아지는 공무원시험 경쟁률이다. 올해 국가직 9급 경쟁률은 22.8대1로 3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2019년 39.2대1에 달하던 경쟁률은 2020년 37.2대1, 2021년 35대1, 지난해 29.2대1 등 지속적이 하락세이다. 경찰공무원시험 위주의 한 학원 관계자는 길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예전엔 추석 전에도 길거리에 사람들로 가득했고 학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끼리 추석 음식을 나눠 먹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다"며 "학원을 차리기만 하면 강의실에 학생들이 찼던 시대는 끝났다. 이젠 몇몇 학원에 학생들이 몰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공시생을 상대하는 식당도 한산하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시기를 끝내면서 매출이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최근 들어 공무원 인기가 시들해졌다. 학원들이 현장 강의뿐만 아니라 인터넷 강의도 제공하면서 수험생들이 굳이 노량진까지 오지 않는 세태도 매출에 악영향을 준다. 이 일대 식당 상당수는 수험생들이 귀향하는 이번 추석 연휴 때 아예 셔터를 내린다. 노량진서 뷔페를 운영하는 김모씨(32·남)는 "잘 나갈 때는 하루 손님 600명가량이었는데 이젠 300명 정도로 줄었다"며 "이번 추석 땐 200명 정도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비어가는 노량진 학원가를 지키는 마지막 터줏대감은 시험을 오래 준비했거나 나이가 많은 수험생들이다. 이들 상당수는 이번 추석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님께 눈치가 보인다" "이번엔 붙기 위해서다" 등 이유는 다양했다. 내년도 9급 공무원 공채를 준비하는 고형진씨(29·남)는 "고향이 제주도인데 비행기표도 못 구해 겸사겸사 추석에 집 안 가고 공부하기로 했다"며 "공무원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긴장 속에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학원은 이들을 위해 추석에도 강의를 연다. 9급 공무원 준비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박문각공무원학원의 강사 12명 가운데 6명은 추석 연휴 동안 강의를 지속한다. 박문각 관계자는 "선생님들에게 추석엔 휴식을 취하라고 공지했지만, 절반가량 나와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며 "추석에 귀향하지 않는 수험생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는 수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