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 '대기업 근로자만 수혜받는 정년연장…'계속고용' 논의해야'

아시아경제 인터뷰
임금체계 개편 없는 정년연장, 청년 고용 축소로 이어질 것

"단순히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 노동조합이 있는 대규모의 대기업·공기업 등에서 근무하는 기존 근로자만 수혜를 보게 됩니다. 청년들에게 절망을 주는 행위죠. 직무 변경과 근로시간 감소 등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없는 정년연장은 불가능합니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은 정년연장의 전제로 '임금 체계 개편'을 꼽았다. 임금 체계는 그대로 둔 채 정년만 연장하는 경우 노조가 잘 조직돼 있는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서 일하는 근로자만 혜택을 볼 것이며, 이는 결국 대기업·공기업의 청년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8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대기업 은퇴자, 빈곤 우려할 수준 아냐

지난 8일 광화문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만난 김 상임위원은 최근 노동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정년 65세 연장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하며 반대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지난달 16일 한국노총은 "노령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일치시켜 노후 빈곤 예방과 고령자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정년 60세 이상을 65세 이상으로 늦추자는 국민동의청원을 제출했다. 12일 현재 동의 수는 3만9500명을 넘었다. 하지만 김 상임위원은 고령층 빈곤해소를 위한 정년연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요 근거가 장기간 실업상태에 있거나 외부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한 취업상태에 있는 고령층의 소득절벽(소득 크레바스) 해소"라며 "하지만 노조가 정년연장을 주장하는 곳은 공기업과 대기업이고 여기서 은퇴하는 분들은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해 빈곤에 직면해 있는 분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상임위원은 이어 "지난해 기준 정년 연령의 경우 300인 이상 기업은 60.2세인데 반해 300인 미만은 61.5세, 노조 있는 곳은 60.1세인데 노조 없는 곳은 61.8세"라며 "이는 노조 없는 중소기업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오히려 자율적으로 정년을 연장하거나 계속고용을 하는 곳이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년연장 시 전체 근로자의 86%에 달하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겐 계속고용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상임위원은 한국의 경우 연공제적 성격이 강해 은퇴 시기가 되면 통상 생산성은 낮아지고 임금은 올라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년연장을 포함한 계속고용의 경우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근속 1년 미만 근로자의 임금을 100으로 할 때 30년 이상 임금의 경우 한국은 295, 일본은 227, 유럽연합(EU)은 165로 한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은행이 5억원이라는 거액의 퇴직금을 주면서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그만큼 은퇴 시기 근로자의 생산성이 낮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임금을 줄이지 않고 근로기간만 늘리는 정년연장 도입 시 기업은 청년 신입사원 3명을 뽑을 여력을 잃게 될 수 있다. 결국 조건 없는 정년연장은 고령자와 청년을 일자리를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의 선수로 내몰게 된다는 것이다.

정년연장만 계속고용 해답 아냐…다양한 방식 논의해야

경사노위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고령사회대응연구회'를 통해 고령인력 활용 확대와 고용여건 개선 방안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 ▲정년 60세 의무화의 영향 ▲고용연장을 위한 임금체계 개편 선행 필요성 등의 주제를 다뤘다. 해당 연구회는 고용연장을 기존의 근로관계를 청산한 후 재고용 등을 통해 고용이 연장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정년연장이 고용연장 방법의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발족한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는 근로관계 청산을 전제한 고용연장 대신 계속고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정년연장만이 아닌 고용이 이어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자는 의미다. 김 상임위원은 "정년연장에 대해 대중들은 막연히 고용기간을 늘린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인식하지만, 이면엔 대기업·중소기업, 노조·비노조 등 다른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면서 "계속고용은 대기업에게 유리한 정년연장이 아닌 모든 고령 근로자를 위한 다양한 고용 방식을 논의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상임위원이 공동좌장을 맡고 있는 연구회는 일본의 '고령자 고용확보조치'를 주목하고 있다. 2007년 일본은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를 의무화하고, 2021년엔 이 연령을 70세로 연장했다. 김 상임위원은 "일본의 고령자고용확보조치는 정년 연장과 정년 폐지, 재고용 등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하거나 고령자가 원할 경우 업무위탁계약이나 사회공헌사업에서 일하도록 하는 등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65세 고용확보조치 시행 후 81.2%의 기업이 정년연장이 아닌 퇴직 후 재고용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연구회는 계속고용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과 쟁점 등을 담은 논의결과를 올 연말께 정부에 제시할 예정이다. 연구회는 노동계 참여 없이 학계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계속고용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김 상임위원은 "노동계를 어떻게 사회적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문제"라며 "연구회의 논의 결과가 나온 이후에라도 노동계가 참여해서 계속고용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8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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