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함정]①기업경기, 20년 내내 '비관적'?…'한은 BSI'로 보면 그렇다

경기등락에도 20년간 기준치 상회한 적 없어

27세 직장인 김은수씨는 올해 하반기 경기 부진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식 투자를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업황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웠던 김씨는 부랴부랴 관련 통계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꼼꼼히 살펴보던 김씨는 이내 의문점이 생겼다. 6월 모든 산업의 업황 실적 BSI는 전월과 동일한 76을 기록해 기준치인 100을 훨씬 밑돌았는데 장기 시계열로 보니 이 지수는 분기별 조사에서 월별 조사로 바꾼 2003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20년간 기준선 100을 넘어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역대 최고치는 2010년 5월의 95였다.

한은이 발표한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 모든 산업의 업황 실적 BSI는 전월과 동일한 76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현재 경영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나타낸 것으로, 100을 기준으로 웃돌면 업황이 긍정적이고, 밑돌면 업황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20년 남짓 한은 BSI는 기준치인 100을 넘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데다 역대 최고치조차 기준치를 훨씬 밑돌고 있어 일반인들이 기업 업황을 직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은 작년 5월 표준화 작업 검토했다 '없던 일로'

특히 한은 내부에서도 BSI의 개편 필요성을 두고 해묵은 논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한은이 지난해 BSI의 표준화 작업에 대한 최종 검토·논의 끝에 기존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기로 결론 내린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올해는 3년 주기로 돌아오는 표본개편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해라 만약 지난해 BSI의 표준화 작업을 결정했다면, 올해 신(新) 표본 작업에서 표준화가 함께 이뤄져 개선된 지표 반영이 이르면 9월부터 이행이 가능했다. 이같은 표준화 작업의 지연은 그동안 관성적으로 해오던 것에 대한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한은 특유의 조직 분위기도 한몫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BSI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내부에서도 본격적으로 검토했지만, 제조업·비제조업 세부 업종별로 응답자 성향이 달라 움직임이 상이하게 나오면서 표준화 작업 시 개편 전과의 비교 가능성 측면에서 일부 우려가 있었다"면서 "업종 간 비교에서 절대적인 레벨로 1대1 매칭하기 어려운 부분이 발생하면서 표준화 작업의 실익이 기존 통계 방식을 유지하는 것보다 크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BSI는 기업체가 느끼는 체감경기를 지수화한 것으로 경기선행지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른 경기지표와 달리 기업가의 주관적·심리적 요소까지 조사가 가능하고 즉각적으로 기업의 체감경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올해와 같이 경기 반등 시점에 대한 각 주체의 심리가 다르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기업심리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속보성 지표라는 점에서 현실감 있는 지표 반영의 필요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지표를 발표하고 있는 다른 기관의 지표가 언론 등에 자주 노출되면서 한은 BSI가 사장화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매달 한은 BSI 발표 하루 앞서 기업경기동향조사를 발표하는데 시장에서는 전경련 발표를 더 주목하면서 한은과 전경련 간 기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전경련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 대상으로, 즉 대기업 중심으로 BSI를 조사하는 데 한은의 BSI와 달리 경기에 따라 지수 수준이 기준치인 100을 넘나들면서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기업체감경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비판도 적지 않다. 한은 관계자는 "통계의 정합성을 위해 확률표본을 추출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기업 위주의 매출 큰 업종의 표본을 뽑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통계의 정도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매출이 큰 기업 위주의 BSI는 바이어스(편향)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한은은 지난 6월 BSI 조사 시 전국 3255개 법인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며, 이 가운데 제조업 1659개, 비제조업 1132개 등 2791개 업체가 응답해 85.7% 응답률을 보였다. 전경련 대비 조사대상 수와 노력 측면에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노력 대비 금융시장에서의 활용도는 낮다는 지적이다.

미 PMI처럼 합성지수 개발 필요…신뢰도 높여야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한은이 BSI 전반에 대한 개선점을 고민하고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은의 BSI가 일본의 기업 체감경기 지수인 '단칸(TanKan)지수'를 모델로 삼아 개발됐는데, 업황 위주의 조사로 한계가 있는 만큼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에서 발표하는 구매관리자지수(PMI)와 같이 여러 개의 항목 결과에 가중치를 적용해 새롭게 산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긍희 한국방송통신대 통계학과 교수는 "경기 체감이 빠른 일선 기업인들의 체감경기를 지수로 나타내 경기예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BSI의 활용도는 매우 넓다"면서 "우리나라는 통계의 정치적 활용을 우려해 통계 변경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한데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해 통계 보정 작업을 활발히 진행해 지표에 반영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참조, BSI도 현실감 있게 개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올해 1월 표본개편 계획이 나와 이미 시험조사를 하고 있어 지금 개선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현재 지표를 개선하기에는 시계열 연장선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향후 미국·중국 PMI처럼 합성지수로 개발하거나 표준화된 지수를 개발해 보조지표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경제금융부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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