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수단된 코인]①'시스템 암호걸고 코인 요구'…불법 전송 가상자산 지난해만 27조원

제재 대상 기업으로 송금, 스캠 범죄, 다크넷에서 사용 등
코인 이용한 돈세탁 규모도 해마다 증가세 보여
국내서도 불법 행위 기승…5년간 피해액 5조2941억원
가상자산 거래 실명제 의미하는 ‘트래블룰’ 따라야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에 진입하고 있지만 가상자산을 이용한 범죄 행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추적이 어려운 특성 탓에 코인 관련 범죄는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주요 시장 중 하나인 국내에서도 코인 범죄는 사회 문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자금세탁· 해킹·사기뿐만 아니라 코인을 수단으로 삼은 범죄도 더욱 지능화되고 복잡해지면서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제재 대상 기업으로의 가상자산 송금 사례 많아

블록체인 분석 업체 체이널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행위와 관련된 불법 지갑 주소로의 가상자산 전송 규모는 206억달러(약 27조2126억원)로 집계됐다. 관련 금액은 2020년부터 증가세를 보였다. 84억달러에서 2021년 181억달러, 2022년 206억달러로 늘었다. 2017~2018년에는 50억달러 미만이었다가 2019년 123억달러까지 치솟은 후 2020년을 빼곤 해마다 증가했다.

불법적인 지갑으로의 전송은 다양한 범죄 행위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206억달러 규모 중 가장 큰 비중인 43%는 제재 대상 기업에 대한 가상자산 송금으로 확인됐다. 다음으로는 신용사기를 뜻하는 스캠 범죄, 코인 탈취, 온라인 암시장 다크넷에서의 사용 등으로 나타났다. 시스템을 잠그거나 데이터를 암호화해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인질 삼아 코인을 요구하는 랜섬웨어도 뒤를 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다른 때와 달리 제재 대상 기업에 대한 송금이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지만 전통적으로 스캠 범죄가 가상자산과 결합하는 사례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 것으로 파악됐다.

특이한 점은 지난해 가상자산 시장이 2021년보다 침체기를 맞았지만 불법 지갑 주소로 전송된 가상자산 규모는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다. 대표 가상자산 비트코인 가격을 보면 2021년 11월 6만480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지만 하락 곡선을 그려 지난해 말에는 1만6600달러대로 추락했다. 전체 코인 거래 중 불법 비중은 2019년 1.90%로 2017년 체이널리스트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가 하락해 2020년 0.43%, 2021년 0.12%로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0.24%로 다시 증가했다.

코인 탈취, 다크넷 사용, 랜섬웨어, 테러 단체 지원 등 대부분의 범죄 유형에서 가상자산 활용 비중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제재 대상 기업 송금 비중이 큰 폭 증가하면서 불법 지갑 주소로 전송된 가상자산 규모와 전체 코인 거래 중 불법 비중이 커졌다. 미국 등 주요 정부가 범죄 관련성이 있거나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국가·정권·기업·개인에 대한 가상자산 전송을 막으면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코인 이용 돈세탁 규모도 치솟아

아울러 코인을 이용한 자금세탁 규모도 증가세를 보였다. 범죄 행위와 관련된 불법 지갑 주소로의 가상자산 규모 통계가 아닌 자금세탁 통계만 따로 산출했는데, 2020년 85억달러 수준에서 2021년 142억달러, 지난해엔 238억달러(약 31조4279억원)로 급증했다. 가상자산을 통한 자금세탁은 범죄 관련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지갑으로 코인을 이동시키고 이를 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서비스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세탁된 코인 종착지의 비중은 바이낸스, 코인베이스가 대표적인 중앙화된 가상자산 거래소가 가장 컸다. 탈중앙화 금융(디파이)이 그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음지에서 자금세탁 서비스를 해주는 곳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의심되는 코인의 규모도 꾸준히 늘었다. 2019년과 2020년 9억달러 수준에서 2021년 45억달러, 지난해엔 60억달러로 늘었다.

가상자산 채굴을 이용한 자금세탁도 나타나고 있다. 불법 단체 등에서 범죄 수익과 채굴 수익을 섞어 자금세탁을 시도하는 것이다. 범죄로 얻은 수익과 채굴로 손에 쥔 코인을 각각 같은 지갑에 송금해 추적을 따돌리는 수법이다. 체이널리시스는 "온체인 방식의 채굴로 획득한 코인은 검증을 거치지 않고도 자금세탁과 무관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어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라며 "이런 가상자산 채굴로 2018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18억달러 상당의 불법 자금세탁이 이뤄졌을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랜섬웨어나 스캠 범죄에서 이런 유형의 자금 세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가상자산 중에는 상대적으로 보안성이 더 강한 것으로 평가돼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예컨대 모네로는 개인정보 보호에서 탁월한 프라이버시 코인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모네로는 전송할 때 발신인 개인이 아닌 블록체인 그룹 내 다른 참여자의 여러 주소를 결합한 주소를 이용하기 때문에 발신자가 그룹 구성원인 것까지만 공개된다. 또 스텔스 주소 기능으로 일회용 주소를 만들고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거래하는 당사자만이 주소를 결정할 수 있고 타인은 연결할 수 없는 블록체인의 고유 주소에서 교환이 이뤄지게 된다. 거래 코인 수량뿐만 아니라 주소로의 송수신은 난독화를 거쳐 누가 거래에 참여했는지 파악할 수 없도록 한다. 이와 같은 보안성 때문에 모네로는 다크넷이나 텔레그램 등에서 마약과 음란물, 개인정보 등을 사고파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내선 가상자산 빙자 유사수신·다단계 피해 대다수

국내에서도 가상자산과 관련된 불법 행위는 만연해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가상자산 불법 행위 피해 금액은 2018년 1693억원 수준이었으나 2019년 7638억원으로 늘었고 2021년에는 3조1282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1조원을 넘겼다. 5년 동안 피해 규모는 5조원이 넘는다.

5년간 적발된 가상화폐 관련 불법 행위는 총 841건으로 파악됐다. 국내에선 코인에 투자하면 수익이 난다고 홍보해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가상자산 빙자 유사수신·다단계가 616건으로 전체의 73.2%를 차지했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상장되지 않은 특정 코인에 투자할 경우 상장 후 수십배에서 수백배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를 유도해 자금을 편취하는 불법 유사수신 사기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라며 "특히 최근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를 악용하는 불법 유사수신 업체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금융소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한 바 있다.

이런 불법 유사수신 사기는 유튜브를 비롯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접근해 유망한 코인이라며 투자를 부추기고 대출을 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 허위·조작된 시세 그래프를 보여주거나 자체 개발한 코인 지갑 사이트라며 가입을 유도하고 투자금 입금 전에 실제 가상자산이 선지급된 것처럼 투자자를 속이는 수법도 포착됐다. 해외 거래소 소속 임직원을 사칭하거나 국내 거래소에 상장 예정임을 보여주는 가짜 문서를 제시해 속이고 원금 손실 때 매입 가격 혹은 높은 가격에 재매입해준다는 허위의 약정서를 들이미는 경우도 확인됐다.

국내 카드사를 통해 불법으로 가상자산을 거래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8개 카드사의 2018년부터 올해 3월까지 고객의 해외 거래소 거래 시도에 대한 차단 건수는 총 117만4175건으로 파악됐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28만1564건, 2019년 1만5820건, 2020년 43만5300건, 2021년 33만7897건, 지난해 5만7203건, 올해는 1분기까지 4만6409건을 기록했다. 5년간 카드사가 고객의 해외 거래소를 통한 거래 시도를 차단한 금액은 총 5602억원에 이르렀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이 등장하면서 자산의 개념이 넓어지고 코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익명성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도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노려 코인을 범죄 도구 사용하는 사례가 급증했다"라며 "이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국내에서 이미 제도화한 트래블룰이 글로벌 정합성에 맞춰 함께 시행되도록 하고 가상자산 범죄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거래실명제를 의미하는 트래블룰은 가상자산사업자(VASP)가 100만원 이상의 가상화폐를 다른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이전하는 경우 송·수신인의 신원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보관해야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트래블룰 도입으로 허용한 곳 이외의 거래소와 지갑으로의 입출금은 제한되며 전송을 하려면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트래블룰은 자금세탁방지(AML)를 위해 지난해 3월25일부터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시행됐다.

증권자본시장부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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