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리기자
"왜 욕심을 내지 않지? 당신이 적임자인데." 민희정 비즈니스파워존 대표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떠올린 한 상사의 말이다. 그는 시작부터 화려한 패션업계와 거리가 멀었다. 가천대 의상학과 4학년때 상품 기획 인턴으로 들어갔지만 계약직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정규직으로 들어간 첫 직장 LG패션에 다닐 때 외환위기가 터져 팀이 통째로 사라졌다. 아디다스에선 변방 한국지사 신생 조직에서 팀원 1명으로 시작했다. 그때마다 민 대표는 불평하는 대신 스스로가 적임자라는 생각으로 돌파구를 만들었다. 아디다스 독일 본사 한국인 첫 임원에 오른 비결이다. 그렇게 본받고 싶은 리더가 된 그는 3년 전 '커리어 코치'로 변신했다. 인생 2막을 연 민 대표를 만났다.
민 대표는 1996년 LF 전신 LG패션에서 MD(Merchandising Director)로 시작했다. MD는 어떤 상품을 어떤 채널에서 어떻게 팔지 계획하는 '전략가'다. 국내에서 MD라는 직군이 자리 잡기 전이었지만 맞는 옷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외환위기로 소속팀이 없어졌다. 사내 학벌 라인에도 밀렸다. 한계를 느낀 민 대표는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MD 이론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뉴욕 명문 패션학교인 패션기술대(FIT)를 택했다.
유학을 마치고 독일의 아마존으로 꼽히는 오토 한국지사에 들어갔다. 자신감을 토대로 6년간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첫 글로벌 회사에서 의류 MD 헤드로 승진했고 사내 조인트벤처(JV)도 이끌었다. 그러다 다시 욕심이 생겼다. 온라인 판매 중심인 오토를 넘어 오프라인으로 영역을 넓히고 싶었다. 브랜드의 시작이자 리테일의 꽃인 매장 문을 두드린 것.
이력서를 돌리던 중 아디다스 한국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신생 조직인 리테일사업부 자리였다. 아디다스는 소매 업체나 유통 업체에 상품을 뿌리는 홀세일로 시작했다.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직영 채널은 나중에 생겼다. 리테일사업부는 직영 채널을 관리하는 부서였다. 민 대표는 "당시 부서가 자리를 못 잡아 팀원 1명이 전부였다"며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에 몇 달 동안 다른 회사 면접을 보러 다녔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관리(HR) 임원이 민 대표를 호출했다. 왜 총괄 자리를 욕심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데 익숙했던 민 대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바로 리테일사업부 총괄에 지원해 관리자가 됐다. 그는 "사내에서도 리테일사업부 인지도가 없어 매장에 이 상품을 넣자고 해도 먹히지 않았다"며 "팀을 꾸리고 존재감을 만들기까지 8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1명이었던 팀원은 20명으로 늘었다. 두툼한 자료를 만들어 왜 리테일사업부에 사람이 더 필요한지 한국지사 대표와 HR 임원, 다른 팀까지 설득한 결과였다. 조직을 꾸리자 상품기획 뼈대 만들기에 돌입했다. 매장에 들어가는 상품을 고르고 구매, 판매하기까지 필요한 일종의 모범답안을 만들기로 했다. 최신 상품부터 재고품까지, 직영점부터 아울렛까지 다양한 변수를 반영해 엑셀 목차만 3000줄이 넘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재고율을 낮추고 수익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모범답안이 글로벌에서도 통하는지 궁금해졌다. 민 대표는 아디다스 독일 본사를 두드렸다. 문은 좁았다. 전 세계에서 5만7000명이 넘는 직원이 모인 글로벌 회사라 날고 기는 인재가 수두룩했다. 그는 1년에 두 번씩 독일로 출장 갈 때면 본사에 단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급기야 독일에 짐을 놓고 귀국하기도 했다. 반드시 독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민 대표가 제안한 프로젝트를 보고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독일로 날아간 그는 시작부터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소통부터 꽉 막혔다. 매달 주요 지사에 본사 목표를 전달하는 콘퍼런스 콜을 진행했는데 회의가 끝나면 전화가 쏟아졌다. 분명 같은 내용을 들었는데 각기 다르게 이해하고 질문을 던졌다. 민 대표는 그때부터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독일인은 직설적인 반면 영국인은 의례적 미소에도 의도가 있다고 받아들였다. 인종, 인어, 문화권마다 소통 방식이 모두 달랐다. 소통의 변수를 줄이기 위해 업무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그는 사무실 한쪽 벽면 전체를 화이트보드로 채웠다. 본사 비전에 따른 목표를 설정하고 나라별 실행 계획을 세웠다. 이전에는 "매장 관리를 잘하라"고 일괄 지시했다면 민 대표는 맞춤형 로드맵을 제시했다. "올해 본사 경영 목표인 '고객 중심'을 위해 A지사는 직원 역량 평가를 다른 지사보다 높여야 하니 대리점 교육 시간을 늘리라"는 식이었다. 민 대표는 "글로벌 아디다스라는 큰 그림을 위해 각 나라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전달하니 동기부여가 되고 미션이 분명해졌다"고 평가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1년 만에 본사 대리점 사업부 총괄로 승진했다. 4조5000억원 이상의 매출이 나오는 전 세계 아디다스 매장을 총괄하는 자리다. 아디다스 연간 매출의 20~30%를 차지하는 채널이기도 하다. 막중한 본사 임원 자리를 한국인이 차지한 것은 민 대표가 처음이다. 스포츠 브랜드 특성상 여성 임원은 8%에 불과했던 때다.
유리천장을 뚫었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새로운 싹이 움트고 있었다. 바로 커리어 코칭이다. 민 대표가 독일에서 적응하지 못해 회사에서 붙여준 전담 코치가 계기였다. 민 대표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나중에는 커리어 코치를 거꾸로 인터뷰하며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곧장 행동에 돌입했다. 주말과 휴가는 온전히 커리어 코치 준비에 쏟았다. 아디다스 본사가 있는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차로 2시간 30분 걸리는 뮌헨까지 오가며 국제코칭연맹(ICF) 인증 자격증을 땄다. 휴가는 스페인에서 보냈다. 현지 신경과학연구소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자신에 대한 투자라는 생각에 시간이나 돈은 아깝지 않았다. 준비를 마치자 억대 연봉과 화려한 타이틀을 미련 없이 내려놨다. 그렇게 25년간 직장 생활을 접고 커리어 코칭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지인 상담부터 시작했다. 돈 대신 커피를 대접받는 날도, 그마저 없는 날도 많았다. 2년간은 상담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러자 국내 대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기업 강연이나 1대1 코칭을 맡았다. 지난해부터는 온라인 강연으로 무대를 확장했다. 대기업 임원부터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의사, 미용실 사장님까지 모두 그의 고객이다. 민 대표는 "CEO부터 신입사원까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고 싶어한다"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고 미소 지었다.
커리어를 고민하는 여성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여자인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육아휴직 후 복직할 수 있을까' 등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민 대표는 "여자라는 타이틀에 얽매이지 말고 내적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여성 롤모델이 없다고 지레 포기하기보단 성공한 리더들의 장점을 뽑아 나만의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희정 대표는
1996년 LG패션에서 MD로 시작했다. 2001년 오토 한국지사와 2007년 아디다스 한국지사를 거쳐 2015년 독일 아디다스 본사에 들어갔다. 아디다스 독일 본사 첫 한국인 임원에 올랐다가 2020년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비즈니스파워존을 창업해 커리어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