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윤기자
아시아나 항공 '공포의 착륙' 순간에도 30대 범인을 끝까지 제지한 승객이 있었다. 바로 비행기에서 범인 옆자리에 앉았던 이윤준(48) 씨다.
이씨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6일 제주발 대구행 항공기 개문(開門) 사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갑자기 모자랑 헤드셋이 날아가길래 고개를 들어 보니 문이 열려 있었다"며 "그 친구(범인)가 저를 보며 싹 웃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짧은 몇 초 사이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으며 착지했고 옆에서는 '탁'하며 벨트가 풀리는 소리가 이씨 귀에 들렸다. 범인이 안전벨트를 풀고 벌떡 일어난 것이다. 범인은 열린 출입문 앞에 있던 비상문 옆 벽면에 매달린 채로 뒤를 돌아봤다고 한다.
눈빛을 계속 교환하던 승무원이 "도와주세요"라고 외쳤고 이씨는 왼팔을 뻗쳐 범인의 목덜미를 낚아채 제압했다. 안전벨트를 차고 있어 일어날 수 없었던 이씨는 양손이 닿는 대로 범인이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그의 목 주위를 악력으로 잡아내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수초간 씨름하는데 승무원 서너명이 달려왔다. 연이어 승객들도 도우러 왔다고 한다. 이들은 범인을 비행기 안쪽 복도로 끌고 갔다. 비행기는 여전히 착륙 이후 활주로를 달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당시에는 문이 열리는 걸 제대로 본 사람이 없어서 그 친구가 범인이라고 생각을 못 하고, 겁을 먹어서 뛰어내리려고 했다고 착각했다"고 했다. 이어 "뒤에 앉은 초등학생들이 울고 있었다"며 "그야말로 패닉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큰 사고인 줄 모르고 대구로 돌아와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인터넷에서 승무원분들을 욕하는 악플이 많아서 가슴이 아팠다"라며 "추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건 상황을 정리한 승무원들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게 계속 눈으로 사인을 주신 승무원분은 끝까지 침착하게 행동했다"라며 "착륙 과정에 범인을 진압하던 사람들이 튀어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안전하게 잘했다"라고 했다.
이씨는 인터뷰 내내 한사코 자기 얼굴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인터넷상에 유포된 동영상에 자신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멋쩍은 웃음 지었다고 한다. 그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는 '멋진 사내'라고 적혀있다.
대구 동부경찰서는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범인 이 모(33) 씨를 긴급 체포해 사흘째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26일 제주에서 출발해 대구로 향하던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착륙 직전인 상공 213m에서 출입문을 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마치는 대로 A씨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