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지난 3일 서울 강남 학원가 일대에서 벌어진 '마약 음료' 사건. 피해 학생 2명이 마신 음료에는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 ADHD' 등 문구가 적혀 주목받았다.
피해자들은 ADHD 약이 집중력을 강화해 준다고 믿어 마약 음료를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일부 수험생, 취업 준비생 등은 성적을 높이기 위해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약을 입수, 복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ADHD 환자가 아닌 일반인이 약을 오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용의자들이 피해자들에게 건넨 음료수병. [이미지출처=서울강남경찰서]
ADHD는 소아·청소년기에 자주 나타나는 정신과 질환 중 하나다. 현재까지 ADHD의 발생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의학계는 주의력, 집중력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을 뇌에서 제때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DHD를 앓는 아동은 ▲주의력 부족, ▲과잉 행동, ▲충동적 행동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ADHD 약은 ADHD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약으로,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증가시켜 증상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메틸페니데이트 등이 있다.
유튜브, SNS 등에는 ADHD 치료제 처방 후기가 다수 올라와 있다. 실제 환자가 복용 후 증상 완화 효과를 봤다는 내용도 있지만, 일반인이 '집중력 강화제'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출처=유튜브]
ADHD 약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즉,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ADHD 진단을 받은 환자가 전문가의 권고에 따라 복용해야만 한다. 문제는 일부 학생들에게 ADHD 약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에 'ADHD 약'을 검색하면 'ADHD 약 복용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ADHD 질환자가 약을 먹은 뒤 증상이 개선됐다는 내용도 있지만, 일반인이 '집중력 높이는 약'으로 ADHD 약을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일부 발견된다. 한 누리꾼은 "부작용이 있는 약이라고 하니 시험 전, 면접 전날에만 먹으면 될 것"이라고 '팁'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ADHD 약물 처방은 학원가가 밀집한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와 노원구에 집중됐다. 이를 두고 신 의원은 "ADHD 치료 약을 복용하면 과잉행동과 충동성이 줄어든다. 교육열이 높은 강남 3구를 중심으로 ADHD 약물이 집중력을 높여주는 약으로 둔갑한 적이 있었다"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지난 3일 강남 학원가에서 벌어진 마약 음료 사건 당시에도, 학생들에게 마약을 건넨 일당은 음료를 '메가 ADHD 약', '집중력 향상제' 등으로 속였다. 경찰 조사 결과 일당은 근처 중학교에서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음을 시도했다. 수상한 음료를 ADHD 약으로 포장해 시음 행사를 벌일 만큼, 학원가 학생들 사이에 ADHD 약이 친숙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ADHD 치료제 리탈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ADHD 진단을 받지 않은 정상인이 약을 먹으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식약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은 '의약품 안전사용 매뉴얼'에서 "ADHD 약을 복용한 뒤 학업성취도가 오른 아동의 경우 치료제를 복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치료를 통해 주의력 결핍, 증상이 완화돼 학습 능력이 향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ADHD 약이 학생의 주의력을 높인 게 아니라, ADHD 환자의 질환이 완화됐기 때문에 주의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상인이 ADHD 치료제를 잘못 복용하면 "두통, 불안감 등의 증상부터, 드물게는 환각·망상·공격성·적개심 등 정신과적 증상,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행동, 심혈관계 부작용에 따른 돌연사" 등을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ADHD 약의 주성분인 메틸페니데이트는 국가에서 지정한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신경전달물질 조절 기능이 약한 ADHD 환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정상인이 복용할 때 심리적 의존성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