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국내 연구진이 우주선, 가속기처럼 극한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초고강도 금속 합금법을 개발했다. 강도와 연성을 동시에 향상시킬 새로운 방법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손석수 고려대 교수 연구팀이 기존의 강도-연성 상반관계를 극복할 신개념 초고강도 마레이징 중엔트로피 합금 개발 기술을 확보했다고 9일 밝혔다.
마레이징(maraging)은 급냉한 금속을 저온에서 일정 시간 유지시켜 미세 입자를 석출해 강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강도와 우수한 인성을 갖춰 자동차, 항공, 우주, 국방, 공구재료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활용된다. 고/중엔트로피 합금이란 한 가지 종류의 원소가 바탕이 되는 전통적인 합금 설계 방식을 벗어나 여러 종류의 원소가 모두 주 원소로 작용해 높은 혼합 엔트로피를 가지며, 고온에서 단상 고용체를 형성할 수 있다.
일반적인 초고강도 합금 설계 시 고온의 금속을 급냉시켜 단단한 미세조직 기지(재료의 전체 혹은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상)를 형성하고, 급냉으로 과포화된 원소들을 열처리해 입자 형태로 생성하는 두 가지 강화 방법을 함께 사용한다. 이 방법은 강도 향상 효과가 크지만, 연성이 떨어져 하중을 견디는 저항력이 낮아지는 한계가 있다.
마레이징 합금은 두 강화기구를 모두 사용하는 대표적인 합금으로 매우 한단하고 질기지만, 기지와 입자 경계면이 취약해 외부에서 큰 힘이 가해지면 경계면에 응력이 집중되고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정밀설계가 요구된다.
연구팀은 전통적 마레이징 설계 방식을 탈피해 변형과정에서 실시간으로 구조변화를 일으키는 금속간화합물을 석출 입자(과포화된 고용체로부터 석출한 제2의 상)로 활용하여 초고강도와 연성을 동시에 확보한 중엔트로피 합금 개발에 성공했다. 제일원리계산과 열역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단단한 금속간화합물 석출 입자가 상변태할 수 있도록 설계함으로써 경계부에 집중된 응력을 해소하여 균열을 방지하고 높은 강화 효과를 유지했다. 실시간 구조가 변화하는 금속화합물을 이용한 중엔트로피 금속재료는 초고강도 강판 수준인 인장강도(2.1 GPa)와 상용재료의 한계연성(2%)의 2배에 달하는 균일연성(4%)을 확보했다. 후속연구를 통해 초고온과 초극저온 등 극한 환경에서의 특성과 기계적 특성 외의 부식특성, 전기·자기 특성 등 기능적인 부분을 다양하게 개선한 합금을 개발할 계획이다.
손 교수는 “초고강도 구조재료 개발에서 석출 입자를 활용한 강화방법 사용 시 강도 향상이 반드시 큰 연성감소를 대가로 할 필요가 없다는 시사점을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며 “극한환경에서 극심한 하중과 충격을 견뎌야 하는 항공, 우주, 국방 등 첨단 분야에서 특수한 목적에 맞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지난 1월 10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