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정남 '지독한 가난, 섬세한 연기 동력이죠'

윤제균 감독 영화 '영웅'
독립군 명사수 조도선役
올바른 역사의식 배워
인생 바꿔준 반려견 벨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서른살 청년 안중근은 열차에서 내리는 조선총독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안중근이 조도선, 우덕순, 유동하, 유승렬, 김성화, 탁공규와 함께 7인 동맹을 맺고 제국주의를 처단한 것이다. 명사수 조도선도 우덕순, 유동하와 함께 채가구역에서 대기했으나, 열차가 채가구역을 지나쳐 하얼빈역에 정차하면서 이들의 거사는 안중근의 손에 성공했다. 안중근 의사는 '꼬레아 우라'(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세 번 외친 후 순순히 체포됐고, 조도선, 우덕순, 유동하 등과 함께 뤼순감옥에 갇혔다.

배우 배정남(40)은 안중근 의거와 순국을 다룬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에서 독립군 최고 명사수 조도선을 연기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정남은 "조도선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며 "왜 이제 알았는지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준비하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지금이라도 알게 돼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배우 배정남[사진제공=CJ ENM]

조도선은 1879년 함경도 홍원현 경포사(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났다. 러시아로 건너가 세탁업과 러시아어 통역 일을 하다 1909년 하얼빈으로 향했다. 안중근 의거 이후 뤼순감옥에서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 후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배정남은 "탁월한 명사수이자 통역가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안중근을 소개받아 통역을 도우셨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생을 마치셨는지는 기록된 바 없다. 안타까웠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당시 독립운동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장면 촬영이 기억에 남아요. 만약 '조도선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면 내가 사형이구나' 싶어 눈물이 나더라고요. 대본 지문에는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였지만 동지가 죽는데 그렇게 울 수가 없겠더라고요. 감독님께 미안해서 흐느낄 거 같다고 의견을 냈더니 찍어보자고 하셨죠. 서럽고, 응어리진 울음을 참으면서 불렀는데, 한 번에 오케이가 났습니다.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해가 서러운 감정을 끌어내는 게 어렵지는 않았지요."

'인생의 귀인' 윤제균 감독 만나다

'영웅' 스틸[사진제공=CJ ENM]

배정남에게 '영웅'은 배우 필모그래피를 가르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어디 가서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말 못 했는데, 이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며 "진짜 배우가 된 기분"이라고 말을 이었다. 배정남과 윤제균 감독은 영화 '미스터주: 사라진 VIP'(2020)의 제작사 리양필름 이한승 대표 소개로 인연을 맺었다.

"이 대표님이 같은 부산 사람끼리 잘 맞을 거 같다며 윤 감독님을 소개해주셨지예. 그땐 '영웅'을 준비하시는지 몰랐는데, 워낙 존경하는 감독님이라 기뻤죠. 얼마 후에 감독님이 책(시나리오)을 주신다기에 '제가 지금 근처니까 바로 가겠습니다, 고마!' 하고 달려갔죠. 캐릭터를 설명만 듣고 책도 안 보고 그 자리에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며 배정남은 "동경하는 선생님의 런웨이에 서게 된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함께 작업한 윤 감독에 관해서는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정 많고 친근하고, 알수록 고맙고 멋진 사람 같다. 좋은 형이자 인생의 귀인을 만났다"고 말했다.

평소 배우의 인성을 보고 캐스팅하기로 유명한 윤제균 감독, 배정남에게선 뭘 봤을까. 어떤 사람인지 묻자 단번에 그는 "솔직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남한테 피해 주는 거 제일 싫어하고예. 가식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사람입니다. 사투리 말투가 이리 억세니까 사람들이 버릇없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죠. 저는 사람을 좋아해가, 한번 알면 오래 봅니다. 인연을 끊은 적도 없고예. 직책, 나이 상관없이 솔직하게 대하니까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더라고예."

가난했던 유년 시절은 나의 동력

험난한 연예계 생활, 뒤통수도 맞았다. 배정남은 당시 경험이 자양분이 됐다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어릴 때 사기도 많이 당하고, 조금만 잘해줘도 다 퍼줬지예. 뒤통수 맞고 바닥도 쳐가며 고생해가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이제 무리한 부탁은 단호하게 거절할 줄도 알고요. 누군가 도울 때는 돌려받을 생각 안 하고 돕습니다."

배정남은 부산 동래구(현 금정구)에서 태어나 외할머니와 친척들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배달로 생계를 이었고, 중고교 재학 중에도 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유년 시절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지만, 그때 고생은 배우로 나아가는 동력이 됐다. 그는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살았는데, 초등학교 땐 밤에 무서워서 화장실도 못 갔다. 13살 때부터 신문을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고등학교 때 취업을 나갔다. 덕분에 자립심도 강하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2002년 모델로 데뷔한 배정남은 영화, 드라마, 예능을 오가며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패션위크 송지오 개막쇼 무대에 올라 모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배정남은 "계속해서 런웨이에 오르는 이유는 재미있어서"라고 말했다. "저처럼 배우로, 또 모델로 활동하면서 예능도 하고, 이렇게 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예.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활동하는 배우들보다 특색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행복합니까."

사랑하는 가족, 나의 전부 '벨'

배정남에게 가장 큰 보물은 반려견 벨이다. 10년 전 지인이 도베르만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에 보러 간 자리. 두 달 지난 강아지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신발을 물어뜯으며 반겼다. 그 모습이 좋아서 한참을 바라보는데, 구석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있는 강아지가 있었다. 외톨이처럼 앉아있는 모습이 나와 꼭 닮은 그 녀석이 바로 벨이었다고 배정남은 떠올렸다.

[사진제공=배정남]

벨은 지난해 8월 급성 디스크로 전신이 마비돼 현재 용인의 반려동물 케어센터에서 지낸다. 배정남에게 벨은 가족 그 이상의 존재라고 했다. 아픈 벨을 위해 서울과 용인을 오가며 벨을 간호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그는 "10살 된 벨은 사람으로 치면 70대가 됐다. 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정도 버티는 게 기적이라더라. 벨을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 벨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정남에게 1순위는 벨이다. 마지막 연애는 1년 전, 연애 세포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상관없다. "벨을 돌보느라 아무 생각도 안 듭니다. 지금 내 새끼가 아픈데, 하루하루가 골든 타임 아입니까. 지금 내가 할 일은 벨의 재활, 그리고 영화 공부지예.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강아지를 좋아하고 마음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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