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 수도권 거주 직장인 김진범씨(38)는 11개월간의 기나긴 기다림 끝에 신차 출고를 눈앞에 뒀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신차 주문 당시에만 해도 카드·캐피탈사의 자동차 할부 상품 금리는 3% 수준으로 매우 저렴했는데,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할부 상품 금리가 6~7%대로 뛰었단 소식을 접하고서부터다.
# 전남 지역에서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의용씨(42) 역시 최근 캐피탈사의 문을 두드렸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회사에 지입차가 나와 캐피탈사에 대출을 문의했는데, 최근 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해당 캐피탈사가 신규 대출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다. 그는 "상호금융권 대출을 받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카드·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사들의 주된 먹거리였던 자동차 할부 금융(오토론)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로 본격화된 채권시장 경색의 여파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서다. 일부 여전사는 신규 대출 취급을 중단하거나, 디마케팅(고객 수요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마케팅)까지 나서고 있다.
11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최근 국내 캐피탈·카드사의 자동차 할부 금융상품 금리는 6~7% 선까지 올라섰다. 국내 완성차 시장 판매량 1위 모델(지난해 기준)인 현대자동차의 그랜저를 선수금 비율 30%, 할부 기간 60개월로 구매한다고 가정할 경우 현대자동차·기아의 관계사인 현대캐피탈의 금리는 최저 4.2%에서 최고 9.0%까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캐피탈업계 선두권인 KB캐피탈은 7.2~7.9%, 하나캐피탈은 6.6~9.6%의 금리 수준을 보였다.
자금 조달에 있어 캐피탈사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는 카드사들의 금리 수준도 높아졌다. 업계 1위인 신한카드의 오토론 금리는 5.6~6.0%이었고 삼성카드(6.5~7.2%), KB국민카드(6.2~6.3%), 우리카드(5.9~8.1%), 하나카드(5.4~5.9%), 롯데카드(8.4%) 등으로 대부분 6~7%대에 포진했다. 오토론 취급액이 가장 많은 현대캐피탈의 올해 3분기 평균 실제금리가 3.61%였던 점을 고려하면 큰 상승폭을 나타낸 것이다.
이렇듯 자동차 할부 금리가 급증한 이유론 기준금리 인상과 최근 채권시장 경색에 따른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꼽힌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여전채 AA+(신한·삼성·KB국민카드) 등급 3년물 금리는 6.030%로 연초(2.420%) 대비 161bp(1bp=0.01%)나 오른 상태다. 이달 초 여전채 발행실적을 보면 신용등급 AA-급의 A 카드사는 6.541%에, 같은 등급의 B 캐피탈사는 6.922%에 채권을 발행했다. 두 회사 모두 연초 2.5~2.6% 수준의 금리에 채권을 발행했단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조달 비용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최근엔 채권시장이 경색되며 이런 채권 발행마저 힘들어지고 있는 상태다.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은 그간 캐피탈사들의 본업으로 취급됐으나, 자금 조달에 유리한 카드사들도 참전하면서 자동차 판매가 급증한 지난 수년간 치열한 경쟁의 장이 돼 왔다. 국내 카드사들의 오토론 취급실적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하지만 '돈맥경화' 현상이 좀체 해소되지 않으면서 여전사들은 디마케팅에 나서거나 신규 대출 취급을 중단하는 등 사업을 줄이고 있다. 여전업계 한 관계자는 "카드사나 대형 캐피탈사의 경우는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중·소형 캐피탈사는 (여전채) 차환 발행이 되지 않다 보니 신규 대출 취급을 사실상 접고 기존 여신 회수에 집중하는 곳도 많다"면서 "기업금융 분야는 물론 리테일 분야도 영향권"이라고 전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